靜物禮讚 정물예찬
A Praise for Still Life
2004.01.30.(Fri) ─ 2004.03.14.(Sun)

정물예찬_일상의 사물
그림 그리기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처음 접하는 소재는 주변의 움직이지 않는 사물, 즉 정물이다. 석고, 화구통, 책가지들, 구겨진 식탁보, 꽃병, 짜다가 만 물감, 때로는 싱싱한 사과 몇 알 등 화실에 널려져 있는 사물을 그대로 묘사하는 작업은 그림을 배우는 첫 단계다. 정물화란 일상의 사물을 재현한 그림으로, 대중에게 가장 가깝고 친숙한 회화의 기본 형식이다. 영어로는 정지된 모습이라는 뜻을 지닌 ‘스틸 라이프 still life’로 불린다.
정물이든 풍경이든 아니면 인물을 그렸던 간에 일반적으로 잘 그리고 못 그린 그림을 판단하는 기준은 실물을 얼마나 똑같이 그렸느냐에 달려있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그러다 보니 대상의 비례가 실제와 틀려 보인다거나 시점이 어그러져 있다거나 또는 특정대상에 대해 인습적으로 알고 있던 색과 다른 색상이 등장하면 그 그림은 곧 못 그린 그림이 돼버리고, 대중에게서 외면을 당하고 만다. 특히 우리가 늘 보는 사물을 그린 정물화는 대중들을 혹독한 비평가로 만드는 구실을 제공하기에 알맞다. 대중은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업에서 실물을 알아볼 수 없다는 이유로 반감을 가지며, 이해할 수 있는 그림-사실은 사물과 똑같이 묘사된 그림-이 아니라고 외면한다. 하지만 조금만 비켜서 본다면 이 고정된 관념이 얼마나 편협한 사고이며 미술에 대한 시야를 좁게 만드는 헛된 상식인가를 알게 된다. 미술은 단순히 대상을 ‘똑같이 그린다’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정물화의 개념은 17세기경 종교적 우상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사회가 변화하면서 뒤따른 관습과 사고방식의 변모에서 비롯됐다. 우리는 먹음직스런 음식으로 가득 찬 당시의 네덜란드 식탁 모습을 기억한다. 이전의 회화는 시대적 사회적 요청에 따라 기록화 또는 우상숭배적 종교화의 도구로서 기능을 했다. 그러나 세상의 중심이 신으로부터 인간으로 넘어가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주변과 스스로의 삶으로 눈을 돌린다. 교황이나 왕의 얼굴을 그린 그림이 아닌 거리의 행인이나 아이들을 그리게 되고, 신을 위해 받쳐진 황금식기와 음식 대신 부엌의 소박한 식기들, 거실의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매일 먹는 과일들이 새로운 주제로 떠오르면서 이제까지는 사소하게 여겼던 개인의 삶이 화면의 중심으로 이동한다.
이후 산업혁명, 현대문명의 도래 등 시대의 변화와 문명 발달의 변천사를 겪으며 화면에 등장하는 소재에 있어서도 변천사가 형성된다. 화가들은 그가 속해있는 시대의 생활상이나 사회상을 정물을 통해 화면에 담아냄으로써 시각적 기록자의 역할을 수행했고, 한편으로는 정물화를 새로운 화면구성의 실험무대로 삼으면서 현대 회화사를 새롭게 형성해 왔다. 후대의 감상자들은 화면에 그려진 정물의 모습에서 당시의 시대상을 읽어낼 뿐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하는 정서적 교류를 나눌 수 있다.
이제 우리의 경우를 살펴보자. 조선시대 진경산수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우리의 회화는 실재하는 대상을 그린다기보다 정신수양을 지향했다. 산수풍경을 그리더라도 실경이 아닌 관념산수를 그렸다. 산수 속의 인물로는 신선이 등장하기 일쑤였다. 18세기가 지나면서 새로이 근대의식을 경험하게 되고 우리도 회화에 있어서 주변 사물에 관심을 갖는다. 그릇과 꺾어진 가지를 그린 기명절지(器皿折枝)나 책걸이 그림 등 한국형 정물화가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서양에서 정물을 고민한 것만큼 여러 요소들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이후 개화기를 맞으며 신문물의 도입은 우리 사회에 정신적, 물질적으로 급작스런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미술계에도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서양의 화법을 적극적으로 익히게 된다. 아쉽게도 신문물과 서양화 기법이 순식간에 들이닥치면서 우리는 생활에 기반한 회화를 연구할 겨를도 없이 서구를 따라가기에 급급하느라 우리의 회화철학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이 점은 우리 회화의 역사가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1960-70년대 우리나라는 경제적 성장기를 맞이하며 주택, 아파트 보급의 시대가 열린다. 이에 따라 자신들의 거실이나 침실을 꾸밀만한 그림을 찾는 수요가 발생하고 아울러 문화적 향유를 누리고자 하는 계층이 확대된다. 이 수요층을 타깃으로 꽃이 담긴 화병이 그려진 정물화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이들은 감상하기에 부담 없고 아름다운 화면을 구성하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번 전시에서 특별전의 형식으로 보여지는 고려대학교 박물관과 동아일보사가 소장하고 있는 정물화들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따른 작업들로, 일정한 소재 속에서도 대중의 구미를 맞춰야 하는 상황과 작업의 성취도 사이에서 고민했을 흔적들은 눈여겨볼 만하다.
1980년대 민주화시기에는 회화가 모더니즘계열과 민중미술계열로 이분화되면서 정물화는 설 자리를 잃은 듯 보인다.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가 사물을 그리는 일을 한낱 하찮은 것으로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나, 그럼에도 여전히 정물은 미술이 다루어야 하는 주요 테마임을 잊지 않은 작가들이 있다. 작가들이 그린 것은 사물이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그들이 정물 속에서 표현하고 의미를 두고자 한 것은 시대의 흐름이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작가들의 의식이 보다 자유로워지면서 특별한 경향에 구애 받지 않으면서 다양한 작업성향이 공존하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많은 작가들은 정물을 자신의 작업 소재로 잘 활용해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정물을 통해 개인의 일상을 드러내기도 하며, 정물을 자신의 개념을 전달하기 위한 표현의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정물이라는 소박한 소재가 가진 한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하는 것이다.
‘정물예찬’전의 본 전시는 현재 활발히 작업하는 미술가들의 정물작품들을 모은 전시로, 정물을 다루는 관점을 셋으로 나누어 구성했다. 정물화적 정물, 팝아트적 정물, 그리고 개념주의적 정물이다. 이는 분류상의 편의를 위한 것으로, 어떤 작업이든 세 가지의 성격을 모두 함유하고 있으나, 그 중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경향에 맞추어 설정해보고자 했다. 정물의 재현이라는 기본적 성격에 충실해 보이는 작업들을 ‘정물화적 정물’로 보았고, 대중적, 팝적인 요소가 강한 작업들을 ‘팝아트적 정물’로 묶었다. 그리고 개념주의적 요소들을 담은 작업들을 ‘개념주의적 정물’로 보았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은 사회적, 문화적으로 지난 한 세기와는 또 다른 변화가 형성되는 시기이다. 문화를 앞세우는 최근의 움직임 앞에 오히려 참된 문화가 뒷전으로 밀리는 듯한 묘한 대척점에서 미술의 기본적 소재를 다루는 작가들을 만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들의 작업을 조명한다는 것은 근대화시기에 일상 속의 미술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던 상황과 달리, 일상의 사고(思考)가 담긴 현재의 회화사를 고민해 보고자 하는 바램을 담고 있다. 물론 정물에 관한 전시가 현재 우리 나라의 미술을 다 담고 있다고는 주장할 수 없다. 하지만 정물이라는 소재를 통해 미술의 근본을 다루고자 한다는 점과 아울러 미술과 일상의 관계를 통해 동시대 우리사회의 의식을 가늠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자그마한 평가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태령 / 일민미술관 디렉터

참여작가
강요배, 권여현, 김덕기, 김범, 김수강, 김은진, 김지원, 김지은, 김지혜, 김현숙, 김형관, 김혜련, 노정연, 류제비, 문형민, 박병춘, 박용남, 박이소, 박재웅, 박대홍, 설원기, 이수경, 이지은, 전영근, 정보영, 최은경, 최진기, 한슬, 홍경택, 황동하, 황주리, 황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