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서울, 이야기 도쿄_아라키 노부요시 사진전
Novel Seoul, Story Tokyo_Araki Nobuyoshi
2002.11.15.(Fri) ─ 2003.02.23.(Sun)

지난 9월 어느 날 밤 10시, 도쿄東京 롯본기六本木의 한 카페에서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이 행사는 독일의 유명 사진전문 출판사인 타센TASCHEN에서 발행한 아라키 노부요시의 사진집 출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입장을 위해 줄은 선 축하객들, 카페 안에 설치된 2개의 대형 스크린에 비치는 그의 센세이셔널한 대표작품, 음료와 다과를 들고 담소를 나누는 성장盛壯의 트렌스젠더들, 150,000엔이라는 가격을 달고 있는 13kg 무게의 대형사진집 아라키, 그리고 익살맞은 제스쳐와 대화매너로 자신의 팬들에게 적극 화답하는 자그마한 체구의 아라키 노부요시. 마치 아라키가 펼치는 대형 퍼포먼스를 보는 듯 그의 독특하고 괴짜스러운 기질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현장이었다.

일민미술관이 초대하는 사진 작가 아라키 노부요시는 사람이나 도시 등 주변의 모습을 담은 꾸준한 작업을 통해 사진예술에 대중적 트렌드를 접합시킴으로써 순수예술의 영역을 확장시킨 일본 현대미술계의 대표적 작가이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아라키식 에로티시즘은 인간에게 내재된 성에 대한 욕구를 특유의 독창적 시각으로 해석한 것으로, 그의 작품세계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에로티시즘을 넘어 대중으로 하여금 미의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일민미술관이 마련하는 전은 작가가 지난 40여 년간 찍은 대표작품과 함께 일곱 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하면서 서울 주변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로 구성되는,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아라키 노부요시의 개인전이다.
일반적으로 예술가의 작업은 주변의 일상에서 비롯된다. 특히 실제實際하고 있는 것을 찍는 사진 작업의 경우, 작가의 ‘일상 usual life’이 작업에 투영되는 것은 어떠한 장르보다 명백한 일이다. 아라키의 작업 역시 그의 일상생활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일상’에 대한 인식으로 아라키의 ‘일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에 바로 아라키 작업의 특징이 자리한다. 일반인들에게는 예사롭지 않으며 때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행위, 존재, 시각, 관념 등이 아라키에게는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우며 그러면서도 흥미진진한 일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때로 외설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아라키의 렌즈에 잡힌 여자, 꽃, 음식, 도시, 하늘에서는 아라키 특유의 감수성, 즉 선정적이고 퇴폐적이면서도 애절하고 흐느끼는 듯한 센티멘탈리즘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그 감수성의 근간을 ‘love’라고 말한다. 삭막한 도시에 묶인 여자의 모습을 언뜻 보았을 때 생기는 선정성에 대한 시비는 작품에 빠져들면서 현대 도시인의 고독과 소외감에 대한 동감으로 바뀐다. 이러한 예상치 못한 감정의 변모야말로 아라키의 작업세계를 이해하는 주요 열쇠가 된다. 또한 작가는 서울이야기를 통해 주로 도심의 작은 골목길과 그곳 소시민의 모습, 그리고 몇몇 유흥업소 등의 모습을 담고 있지만, 아라키에게 ‘love’는 여전히 주요 관심사이다.
아라키는 서울이 도쿄와 흡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극히 다르다는 점에서 그가 방문한 어떤 도시보다도 매력적이고 애착이 가는 도시라고 말한다. 그는 1982년부터 2000년에 이르기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서울을 방문하여 서울 주변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아왔는데, 이들을 엮어 2001년, 일본 도쿄에서 전시회를 열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 소설 서울 이라는 두툼한 사진집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아라키는 1980년대 무렵의 서울의 골목길에서 도쿄의 전후 재건기를 엿보았고 일종의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울 방문을 거듭하면서 깨닫게 되는 도쿄와의 상이함은 작가의 호기심을 자극하였고, 아라키는 두 도시의 동질성과 차별성에 따른 다양한 문화적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즉, 아라키는 예술의 방식을 빌어 그 사회에 담겨진 대중문화 코드를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아라키의 독특한 작업세계관을 살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가 지닌 두 도시에 대한 감수성을 관찰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흥미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아울러 이번 전시에서는 아라키의 명성을 조명하는 대표작뿐 아니라 한국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을 위하여 열의를 가지고 새롭게 제작한 작품들이 선보인다. 그 중 ‘A의 일기 A’s Diary’는 2002년 1월1일부터 8월15일까지의 하루하루를 사진으로 기록한 작가의 일기이며, ‘천공 天空’은 두 나라의 하늘을 찍은 1000장의 폴라로이드로 구성되는 작업이다. 또한 아라키는 전시회를 개최하는 도시와 연관하여 영상물 ‘아라키네마’를 제작하여 라이브로 발표하는데, 이러한 행위는 예술과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고무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일민미술관은 찰나적 순간을 생동감 있게 이끌어내는 아라티 노부요시의 전을 마련하면서 이 전시가 미술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자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아울러 한 작가의 시각에 잡힌 서울과 도쿄라는 두 도시, 나아가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나라의 대중사회의 미학을 비교하여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태령 / 일민미술관 디렉터

참여작가
아라키 노부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