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동아미술제 전시기획공모_당신과 나의 삶이 이항(移項)할 때
2010 Dong-A Art Festival_The Moment of Transposition
2010.09.10.(Fri) ─ 2010.10.10.(Sun)
Exhibition Hall 1,2

2010 동아미술제 전시기획공모 심사평
보기보다 훨씬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기획의 수행은 당사자들에게 난처한 작업일 것이다. 시각의 직접성을 통해 형식의 무제한 개방이 이루어진 이 분야에서 그만큼 학예적인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전위적인 것에서부터 전통적인 양식이 두루 공존하는 이 영역에서는 방법을 확신하는 기획이 경험상의 편견으로 드러나기 십상이다. 여기에‘시각문화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시오’라는 미션이 전제될 경우 기획은 더욱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알려진 속설처럼, 사람들은 아는 만큼만 보고자 할 뿐이며, 뭔가 앞서가는 볼거리의 제시는 관객들에게 일단은 이질감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상적인 전시기획이란 기획자의 학예이론이 작품들의 심미적인 나열을 넘어서 새로운 각도의 의미관계들을 생성하는 작가연구와 실천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요컨대 실현될 전시가 동시대미술에 관한 상투적인 선입견들을 타파해 나갈 가능성과 비전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2010 동아미술제에는 총 37편의 전시 기획안이 출품되었다. 일단 전문성과 현장경험들이 엿보이는 비교적 고른 수준의 기획안들이 대다수 제시된 것은 고무적인 현상으로 보였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심사위원들의 합의를 이끌어 낼만한 기획안은 발견되지 않았다. 합의제 심사에서는 전문적인 기획과 미시적인 접근방법들이 심사위원들의 관심사가 엇갈리는 과정에서 다수의 추천에서 제외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다수의 이상적인 견해들을 충족시키는 전시기획이 희귀한 것은 비단 국내의 현대미술전시에만 한정된 문제는 아니다.
심사기준을 보다 현실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집중적인 검토대상이 된 것은, 권정민의 와 황진영의 두 편이었다.
는 전시의 실질적인 내용을 이룰 작가연구의 밀도가 돋보였다. 작품의 이미지들은 다각도로 해석할 수 있는 짜임새의 전시구성을 어느 정도 이루고 있었다. 이 기획의 소재는 ‘베란다 속의 판타지’로 표상되는 인공자연의 왜곡된 시각문화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자연과 작위의 관계에 관한 기획자의 전반적인 구상들은 작가들의 세계관을 엮는 피상적이고 온건한 테두리로 보였다. 좀 더 창의적인 담론이 뒷받침되었더라면 풍성한 시각적 전시가 될 예감이 엿보였다는 점에서 은 아쉬움을 남겼다.
는 기획의도의 시의성이 강점이었다. 이 기획은 적극적인 이주가 일반화되고 있는 사회적 현실에서 우리와 타자 또는 내부와 외부의 문화적 전위(轉位)가 작업에 미치는 상호작용들을 포착하고 있다. 다만 특정지역과 세대에 한정된 작가연구가 이 기획의 문제점이었다. 작가선정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 기획 안에 반영되어 있지 않은 것이 불안한 요소였다. 결과는 자칫 재미 한국계 신세대작가들의 소그룹 전시로 속단될 우려가 있었다. 이것은 전시개념을 구체화할 현실적이지만 너무 안이한 접근방법이라는 비판들이 나왔다.
하지만 심사위원들 모두는 주변을 돌아보는 황진영의 침착한 시선과 언어의 잠재력에 상대적인 기대를 모아보기로 했다. 물론 전시가 이론을 배반하는 경우는 흔하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국내의 전시형식들은 가시적 효과나 스타일의 결핍이 아니라 기획을 둘러싼 담론의 부실함에 여전히 더 큰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다.
김현도 / 심사위원장

당신과 나의 삶이 이항(移項)할때 The moment of transposition
Transposition이라는 용어는 음악, 수학, 미술, 철학, 의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조금씩 다른 의미로 쓰인다. 수학의 방정식에서 transposition은 등식의 한 변에 있는 항을 부호를 바꾸어 다른 변으로 옮기는 이항을 말한다. 음악에서는 멜로디를 그대로 유지하며 음역의 높낮이를 바꾸는 조옮김을 의미한다. 초현실주의의 낯설게 하기에서 나타나는 전위 또한 transposition이다. 어느 경우건 공통적인 것은 위치를 바꾸되(trans-position), 구성요소들간의 기존 관계를 유지하며 전혀 새로운 구조로 진입한다는 점이다.
이 전시는 transposition을 편의상 “이항”으로 번역하면서 오늘날 새로이 대두되는 삶의 형태를 고찰하기 위한 개념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즉 이항이라는 계기를 “주체가 새로운 경험의 구조로 재 위치하는 시간적, 공간적 과정”으로 정의한다. 새로운 경험 구조로의 이동은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 매우 빈번히 일어나며, 우리의 삶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하나의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의 이동,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의 이동, 하나의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의 이동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이민immigration나 이산diaspora이 아닌, 이항transposition이라는 용어로 개념화하려는 것은 오늘날의 주도적 이동을 설명하기에 보다 적절하기 때문이다. 우선 디아스포라는 기존의 장소를 중심으로 하여 떠나간 구성원의 이주를 다룬다. 따라서 기원이나 정체성이 문제시 된다. 반면 이민은 새로운 장소를 중심으로 하여 이주해 온 구성원의 문제를 다룬다. 중요한 것은 융화의 문제다. 그러나 오늘날의 주도적인 이동 방식은 떠나온 장소나 새로운 장소 어디에도 중심을 두지 않는다. 이주는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닌, 선택에 의한 것이며 원하면 언제든 기존의 장소로 되돌아 갈 수 있다. 민족적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거나, 새로운 땅에 융화되어야 하는 당위를 말하지 않는다. 기존의 존재방식을 준거로 하여 새로이 얻게 되는 존재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자적 위치를 즐긴다. 이것이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새로이 대두되는 이동이며, 이 전시가 다루려는 것이다.
이항의 계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주체의 변화다. 지금까지 형성된 나라는 주체는 새로이 구조화된 감각적 경험을 통해 변화하기 시작한다. 경험은 낯설고 이에 대한 반응 역시 이전과는 달라질 것이 요구된다. 이렇게 모든 것에 새로이 반응하는 가운데 기존의 나를 형성하고 있던 모든 것들이 의심의 대상이 되고 급기야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까지 이른다. 결국 나는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주체의 자리에서 내려와 주변 환경에 의해 새로이 형성되는, 낯선 탐구의 대상인 객체의 자리에 선다. 즉 이항의 순간 주체와 타자의 자리바꿈이 일어나고, 비로소 주체 안에 내재한 타자성, 차이, 균열이 가시화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체의 새로운 위치지음은 새로운 사유를 유발한다. 이제까지 부력에 의존해 헤엄치던 물짐승이 척추를 내리누르는 무게를 버티고 뭍에 한발을 내딛듯이 내게 익숙한 관습적 사고와 환경, 그 자기장을 벗어나 미지의 세계를 향하게 된다. 이것이 이항의 계기가 갖는 긍정성이다. 따라서 이항의 경험을 무의식적이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선취하여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인식 지평을 확대하고 삶을 풍부하게 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는 한편으론 구조에 의해 만들어지는 객체로 남는 것이 아니라 타자성을 내재한 새로운 주체로 다시 서는 길이기도 하다. 이 전시에 포함된 작가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삶의 이항을 경험해 왔으며, 그러한 경험을 주체를 새로이 위치 짓고 인식을 확장하는 어떤 계기로 삼아왔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을 예민하게 자각하여 작품으로 결절화한다. 이들의 경험이 공유된다면 그것은 동시대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전시는 이항하는 주체들의 동시대성을 성찰하려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기획자 황진영 / 독립 큐레이터

참여작가
김지은, 박경근, 박지현, 로버트 리, 탐 리

기획_황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