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Blossom-동북아 3국 현대목판과 특별전
Red Blossom-Contemporary Woodblock Prints of Korea-China-Japan Special Exhibition
2005.02.18.(Fri) ─ 2005.04.24.(Sun)

Red Blossom_목판화의 새로운 가능성

최근 동아시아 국가들이 상대방의 문화에 관심을 갖고 그 문화적 특성을 찾아내는 과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재인식하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문화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를 특성화하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문화적인 측면에서 많은 접근이 있었고, 이제 순수예술의 교류도 차츰 늘어나는 추세이다. 일민미술관이 마련하는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의 현대목판화 전시는 목판화를 통해 세 나라의 미술문화를 살펴보는, 같음과 다름을 찾는 전시라 할 수 있다.

예로부터 미술은 종교적 도상을 다룸으로써 대중에게 신앙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도구로 쓰여졌다. 다량복제가 가능한 판화는 이러한 종교적 목적을 실행하는데 기여하기도 했고, 유명 고전회화를 복제하여 대중에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기능을 행하기도 했다. 이로써 판화는 미술의 저변 확대를 가능하게 해왔으며, 대중적 소통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량생산이 가능하다거나 복제가 가능하다는 판화의 장점 이면을 보면, 판화가 미술의 타 장르에 비해 저평가되어왔다는 사실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유일성이나 희소성적인 면에서 판화는 다른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세인 것이다.

더구나 아이디어나 개념을 부각하는 현대미술이 주류를 이루면서, 판을 깎는 노동을 필요로 하는 판화작업에 대한 관심은 점차 줄어들어왔다. 그러나 판화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성격, 즉 작가의 의도를 집약해서 단순화하고, 판을 깎고, 물감을 묻혀 찍어내는 작업을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은 미술의 기본을 집중적으로 표현하는, 충분히 가치가 있는 작업이다. 또한 시각적 서사성 또는 상징성이 미술의 본래적이고 전통적인 역할이었다는 점을 재인식하게 된 최근의 동향에 비추어 볼 때 판화는 미술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전은 미술로서의 목판화와 화가로서의 版畵家-판화가 역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다-를 주목함으로써 판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살펴보는 의미를 지닌다. 이 전시는 다양한 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 판화부문에서도 특히 목판화 작품을 다루고 있다. 목판화는 나무 판에 형상을 새겨 이를 종이에 찍어내는 판화형식으로, 판각의 재료로 나무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자연친화적 표현 매체라 할 수 있는데, 목판에 새기는 형상이나 내용 또한 동시대 생활을 주제로 하는 동양의 정신을 담고 있다.

원래 목판화는 동양에서 꽃피던 미술이었고, 그 전통 속에 살아 숨쉬는 생활미술이었다. 이 전시는 서로 다른 근대미술의 역사를 통과해온 한국, 중국, 일본의 목판화 미술을 21세기의 미술 교류를 위한 새로운 시작으로 삼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물리적으로는 동일한 지역의 동일한 시간대에 살고 있지만, 문화적이거나 사회적, 정치적 경험에서는 상이한 시, 공간에 살고 있는 세 나라가 판화를 매개로 한 공간, 한 시간에 만나 어우러지는 목판화전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이 현대목판화전은 한국적이고, 중국적이고 또한 일본적인 정체성을 담고 있다고 여겨지는 작가와 그들의 작품들로 이루어져있다. 전시되는 작품들은 각 나라 고유의 전통적 성격을 재해석하여 현대화하고 특성화시킨 작업들이다.

중국적인 특징으로는 사회주의국가의 선동매체로서 발달해온 목판화정신을 꼽을 수 있는데, 중국 목판화작업에서는 리얼리즘 미학으로서의 전달력이 강하게 느껴진다. 중국에서는 현대미술의 수업과정으로 목판화가 거의 필수적이라고 하며, 따라서 회화나 설치 등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현대 미술가들은 대부분 목판화가 출신이라고 한다. 중국의 현대 목판화가는 리얼리즘 정신을 성공적으로 대중화하고 현대 미술화함으로써 중국 고유의 정신이 담긴 판화미술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있다.

일본적인 특징으로는 우키요에 다색목판화 양식을 바탕으로 하는 특유의 형상, 질감, 색감을 꼽을 수 있다. 일본 고유의 풍속을 다룬 우키요에는 근대기에 유럽에 알려지면서 일본의 문화를 알린 가교역할을 하기도 했고, 많은 미술가들에게 동양적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근대목판화의 명성을 이어받아 일본의 현대 목판화도 화려하고 정교한 기술과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태도를 조화시킴으로써 특유의 일본적 미감을 추구해왔다. 그 결과로 국제 현대판화미술계에서 위상을 높였을 뿐 아니라 국제미술시장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한국은 신라시대 이래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목판술이 발달해왔고 고유의 판각문화와 인쇄문화를 이루었다. 고려시대에 판각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세계적 명성의 목판 불교경전으로, 한국의 문화적 자부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적 정체성의 맥을 잇지 못하는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 다행스럽게도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한국 목판화의 진정성을 담는 작업들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한국적 특징으로는 일상생활과 그 주변 자연전경의 아름다움을 정감 어린 시선으로 관찰하고 여백과 집중의 조화로 표현하는 미의식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전시에서는 특별전으로 ‘한국의 고판화’전을 마련했다. 이는 한국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제작된 목판화전으로, 전국 각지의 주요 소장처의 주요 목판 원판이나 이를 찍은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 금강반야바라밀경(보물877호)나 묘법연화경(보물1306호) 등 보물을 포함해, 평소에 일반에 공개되기 힘든 귀중한 유물들이 한 자리에 선보인다. 다양한 책, 불경, 지도, 능화판 등의 유물들은 우리 선조에게는 바로 일상이고 생활이었다. 서구문화 지향적으로 흘러온 문화적 인식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문화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살펴보는 경향이 대두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 찾기에 있어서 중요한 일이다. 이 특별전시는 한국 고유의 일상의 미를 느끼고 깨닫는 모처럼의 기회가 될 것이다.

현대미술의 타 장르에 비해 목판화 미술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에도 꾸준히 판각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작가들을 보면서 판화와 판화가의 새로운 힘을 느끼게 된다. 점차 노동의 귀중함을 잃어가는 디지털시대에 이들이 미술가로서 실천해 가는 자세는 무척 소중하다. 판화가들은 고된 판각작업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와 에너지를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하며, 이 자세는 판화 자체가 지닌 대중적 소통의 기능을 더욱 확대시킨다.

일민미술관은 전을 마련하며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가 국가적, 사회적, 문화적 전통을 어떻게 발전시키며 현대판화미술에 적용하고 고유의 정체성을 실현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곧 매화가 피는 봄이다. 이 전시가 (목)판화와 (목)판화가를 통한 새로운 미술적 발전 가능성의 토대가 되길 바라며, 꽃이 만개하듯이 세 나라의 판화미술이 만개하길 희망한다.

김태령 / 일민미술관 디렉터

참여작가
김상구, 김준권, 류연복, 이상국, 이인애, 임영재, 정비파, 홍선웅, 리우창홍, 리웨이, 반링,장민지에, 쟈리지엔, 캉지엔페이, 가라사와히토시, 가와치세이코, 모리무라레이, 사카모토교코, 고바야시케이세이, 키노시타타이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