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토크: 김경태, 오가영

《Super-fine: 가벼운 사진술》 작가와의 대화

김경태
중앙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스위스 로잔의 ECAL에서 아트디렉션 과정을 졸업했다. 사물을 촬영함으로써 재현의 이미지를 통해 바라보는 경험 및 형식을 탐구한다. 개인전 Bumping Surfaces》(두산갤러리, 2021), 표면으로 낙하하기》(갤러리 휘슬, 2019)를 비롯, LIVE FOREVER》(하이트컬렉션, 2019), 국가 아방가르드와 유령》(베니스비엔날레, 2018), 종이와 콘크리트》(국립현대미술관, 2017), 그래픽 디자인, 20052015》(일민미술관, 2016)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출판된 사진집으로 『표면으로 낙하하기』(프레스룸, 2019),Float 9 – 일련의구성』(헤적프레스, 2018),Cathédrale de Lausanne 15052022(미디어버스, 2014) 등이 있다.

오가영
서울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독일의 뉘른베르크 예술아카데미에서 사진과를 졸업했다. 작은 단위의 사회가 밀집되어 나타나는, 도시 공간의 이상하고 형언할 수 없는 스펙터클을 사진 가공과 편집을 통해 드러낸다. 개인전 Kai drinks No Water》(Edel Extra, 2018), 그리고 어색한 사이》(화이트노이즈, 2021), REAL FAKE》(Frappant, 2018), Bierdusche und andere schöne Bilder》(Galarie Bühlers, 2018), Foam Talent》(Foam Amsterdam, 2017)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Its Nice That(런던),Unseen Amsterdam(네덜란드),Huck Magazine(런던),Numéro Berlin(독일)과 같은 매체에 작업이 소개되었다.

윤율리: 안녕하세요. 전시를 책임기획한 윤율리입니다. 오늘은 김경태, 오가영 작가님과 작품에 관해 얘기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김경태 작가는 ‘Super-fine’, ‘가벼운 사진술’이라는 제목에 가장 어울리는 분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픽적으로 잘 압축된 결과물을 구현하는 것이 최근 몇 년간 사진의 한 가지 유행처럼 보이는데요. 그런 결과가 나오기 위해 또 그런 가벼운 표면이 만들어지기 위해 사진의 보이지 않는 밀도는 점점 두터워집니다. 예를 들어 같은 장면을 수백 장 찍거나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데 엄청난 노동력이 투입되거나 하는 일이 사진의 뒤편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김경태 작가는 이런 방법론을 다루며 정확한 참조점이 될 것 같습니다.

오가영 작가의 경우 인스타그램에서 처음 작업을 접했습니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돌아다니는 흥미로운 이미지는 너무 많아요. 다 재밌고 기발하죠. 하지만 실제로 전시장 안으로 들여놓았을 때 여전히 좋은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많은 기획자들이 공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전시 공간, 특히 미술관은 보수적인 전시 감상의 문법을 따르는 장소이고 그 안에 자칫 잘못 들어온 것을 고장 난 부스러기처럼, 뭔가 잘못된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가영 작가는 인스타그래머블한 이미지가 실제 작품으로 구현되는 과정의 변환이 굉장히 매끄럽다고 생각했어요.

작가님들이 사진가로서 가지고 계신 고민, 작품 실험의 방식이나 변주의 양상을 들어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오가영: 안녕하세요. 오가영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세미 프레임〉 연작을 만들었습니다. 10년 전쯤 필름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주변의 모습을 수집하는 일을 시작했어요. 그 작업을 한 2년 정도 지속했을 때 한 장의 사진이 왠지 불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 더 재밌는 무언가를 만들어 볼 방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2016년 독일에 가서 사진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면서 차츰 여러 장의 이미지로 포토콜라주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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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격리 시대를 위한 송가 3〉Requiem for Self-Isolation 3, 2020, Digital collage, size variable

필름카메라를 쓰던 방식에서 벗어나 이때부터 더 쉽게 컴퓨터로 옮겨올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 혹은 아이폰으로 작업했고, 특별히 선호하는 카메라는 없었지만 저마다 다른 렌즈 질감을 의식해가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당시 학교가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동물원 옆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자연 환경을 자주 접할 수 있었는데요. 그래서 자연 현상이나 경관을 관찰하면서 여러 시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완성된 한 장의 이미지가 아니라 여러 장의 합친 이미지로 무언가를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자연스레 고민이 이어졌습니다. 지금도 사진을 카테고리로 묶어서 도시 풍경과 거리에서 발견되는 모습을 병렬해 놓는다거나, 자연의 변화를 기록하고 계속 달라지는 사람의 상태를 함께 보여주는 식으로 작업의 주제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무제〉Untitled, 2020, Digital collage, size variable

사진이 한 장에서 끝나지 않고 거기서 어떤 이야기를 더 끌어낼 수 있을까 고민한 것과 비슷하게 사진이 설치되는 방식에 다른 옵션이 없을까 고민하면서 전시를 할 때마다 조금씩 다른 시도를 해보고 있어요. 종이의 물성을 더 드러내거나 사진을 천에 뽑거나 테이프로 붙인 적도 있고요. 아무래도 사진과 종이의 연관성을 빼놓을 수 없어서 종이 자체의 물질성에 관심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왼쪽] 〈물컵 얼굴 1〉Water cup face 1, 2019, Pigment print on ultra glossy paper, masking tape, glass, nails, 50x40cm
[오른쪽] 〈물고기 얼굴〉Fish face 1, 2019, Pigment print on ultra glossy paper, masking tape, glass, copper nails, 24x18cm

〈얼굴들〉은 이번 신작〈세미 프레임〉 연작과 꽤 관련 있는데요. 원래는 이미지를 평평하게 보호하고 돋보이게 하는 유리를 아예 액자 밖으로 꺼내와서 못 위에 얹어 사진을 붙이는 방식, 그렇게 했을 때 이미지가 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려 한 작업이었습니다. 이외에도 종이를 잘라서 기우는 방식으로 조금은 새롭게 이미지의 해체를 시도한 작품도 있습니다.

윤율리: 마침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번 신작에 관해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1층 전시실 입구에 작업이 하나 있고 2층에는 더 큰 작업이 유리에 설치돼 있는데요.

오가영:1층에 설치한 〈얼굴들〉은 움직이는 유리 면에 어떤 작업이 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유난히 이번 봄, 여름쯤에 많이 보았던 사마귀가 생각났습니다. 사마귀가 재밌는 게 카메라를 비추면 빛을 따라서 고개를 돌리고 움직여요. 그래서 이 생물이 가진 특이한 점 또 적극적인 점에 매료됐고 사마귀를 이용해 〈얼굴들〉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얼굴들〉 Faces, 2021, Archival pigment print on matt paper, size variable

세미 프레임〉 연작을 준비하면서 제일 처음 한 고민은 유리를 그저 벽에 기대 놓지 않고 어떻게 공간을 가로지르는 방식으로 설치할 수 있을지였습니다. 고정되어서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모습으로 유리가 놓인 게 아니라 어딘가 애매해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움직임이 연상되는 경첩과 실제 유리 면을 움직이게 하는 바퀴를 같이 사용했어요. 건물에 보통 어떤 식으로 유리가 설치돼 있는지 유심히 관찰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곳에 유리가 쓰이고 있었습니다. 그 유리들은 항상 단단하게 고정된 형태였고 저는 그 지점에서 작게라도 바퀴가 들어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제일 중요한 건 유리 면의 이미지 자체를, 앞면과 뒷면, 그리고 주변 공간을 다양하게 쓰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작품 중 뒷면에만 붙은 이미지도 있고 앞뒷면을 다 사용한 것도 있고 바닥 면에 내려가 있는 이미지도 있습니다. 어떤 이미지는 이미 존재하는 물방울을 모양대로 잘라 원래의 실루엣을 따라가지만 어떤 경우에는 제가 임의로 형태를 찾아냈고요.

〈세미 프레임〉 연작(세부) Semi-frame Series(detail), 2021, Archival pigment print on matt paper, glass, hinge, wheel, size variable

윤율리: 전시 리플렛에는 〈세미 프레임〉 연작이라고 표기돼 있는데 실은 저마다 정확한 이름이 있습니다.

오가영: 첫 번째 작품, 물방울이 있는 이미지에는 〈마라톤 응원단〉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비가 올 때 투명 우산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순간을 포착해서 물방울이 말을 건네듯 사진 바깥으로, 껍질 바깥으로 나오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듯한 연출을 해봤습니다. 두 번째로 동그라미가 여러 개 뚫린 작품에는 〈게임〉이라는 제목을 붙였어요. 물의 표면을 바탕으로 합성한 이미지에서 임의로 얼굴들을 찾아 실제 유리 표면에 오목을 둔 흔적을 관찰하는 혹은 관람하는 듯한 상황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세 번째 작품은 〈벽으로부터 도망치는 벽의 몸과 영혼〉입니다. 어느 날 집 앞에 있는 담장을 보다가 벽이 공간을 가르고 있다는 자각, 무언가를 단단하게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됐고, 거기서 자유롭게 빠져나와 벽을 무시해버리는 존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같은 이미지를 두 번 복제해서 앞면과 뒷면에 붙이고 그것을 뚫고 나오는 것처럼 직접적인 인상을 부여했습니다. 마지막 새 모양은 〈중간지점 불사조〉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건 게와 초콜릿 마카롱을 섞어서 만든 사진입니다. 그 두 가지의 중간값을 찾는다고 가정할 때 그게 뭔지 도무지 알 수 없어진 물리적 중간에서 불사조와 비슷한 모양을 떼어낸 작품입니다.

윤율리: 감사합니다. 김경태 작가의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김경태: 학부를 졸업하고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하던 중 본격적으로 사진 작업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처음에는 건물 사진 위주로 촬영했던 것 같아요. 당시 지방 소도시, 특히 해안가 도시에 아마도 1970~80년대에 지어진 상가주택이 많았고 여기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이런 건물을 보면 일부러 건물 측면이나 후면에 디자인을 하지 않는 건축 관행이 있는데, 그에 더해 차를 타고 시골길을 이동하며 볼 수 있는 한적한 동네 모텔의 조명도 재미있어 보였어요.

〈모델라인 07〉 Model Line 07, 2012-2013, size variable

이런 모텔은 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밤에는 입체를 암시하는 선만 보이는 데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 조금씩 투시가 바뀌는 모습이 마치 3D 렌더링을 할 때 프레임을 애니메이션 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계속 모텔을 찍으러 다녔습니다. 이때쯤 사진 작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 같아요. 건물 사진을 찍을 때도 건축을 어떻게 사진으로 보여 줄 것인지, 입체물을 이미지화하는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온 더 록스〉 On The Rocks, 2013, Archival pigment print, 50×40cm

그다음 돌을 촬영했습니다. 작은 돌을 모으는 게 취미였어요. 성인이 된 후 어디 갈 때마다 기념품 모으듯 돌을 하나씩 주워와서 트위터에 돌 이미지를 올렸어요. 돌의 크기가 대부분 작아서 사진으로 잘 기록해두고 싶었습니다. 돌 사진 이전에 죽어있는 작은 곤충을 촬영하는 작업을 시도했었는데 그때는 포커스 스태킹이라는 기법을 몰라서 결국 렌즈 조리개를 극단적으로 조이는 방식을 채택했어요. 그런데 사진을 찍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특정 조리개 값을 초과하면 회절 현상 때문에 이미지가 전체적으로 흐려지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선명한 이미지를 얻는데 실패했고 그 작업을 포기했습니다. 적합한 촬영법을 계속 알아보다가 ‘돌의 세계’에서는 포커스 스태킹이 아주 일반적인 촬영기법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저는 돌을 수집할 때 형태보다는 광물의 종류, 색감, 질감 이 세 가지를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데요.

〈온 더 록스 08〉 On The Rocks 08, 2013, Archival pigment print, 50×40cm

어느 한 부분만 좋다고 돌을 수집하지는 않아요. 이 부분도 좋고 저 부분도 좋고, 여러 조건이 충족돼야 하는데 바로 그런 점을 사진에 드러내고 싶었어요. 포커스 스태킹은 여러 시점이 한 장으로 뭉쳐진 결과물이니까 제가 직접 사물을 바라볼 때 시선을 쓰는 경험을 관객이 이미지를 볼 때도 다시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큰 돌을 다 어디에 보관하냐고 묻더라고요. 다들 이걸 큰 돌로 보는 점 또한 재밌었습니다. 우리가 우주의 행성 사진을 보더라도 실제 크기를 가늠할 수 없잖아요. 제가 찍은 돌을 사진으로 다시 봤을 때 왜 이게 커 보일까 스스로 질문했습니다.

〈프린티드 매터 HW01〉 Printed Matter HW01, 2016, Archival pigment print, 100×80cm

〈프린티드 매터 HW〉(세부) Printed Matter HW (detail), 2016, Archival pigment print, 100×80cm each

〈프린티드 매터 HW01〉는 그다음 진행한 작업입니다. 1층에 설치된 〈프린티드 매터 HW〉는 이 이미지를 크롭한 것인데요. 그때 스위스에 살고 있었는데 유럽의 물은 석회질이 많이 함유된 것으로 유명합니다. 지역마다 석회질, 또는 물의 경도라고도 표현하는데 경도가 높은 지역이 있고 낮은 지역이 있었어요. 물론 경도가 높은 지역이라도 건물에서 정수를 하면 경도가 낮게 나올 수 있고요. 아무튼 어떤 집으로 이사를 갔는데 갑자기 석회질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 거예요. 한 번은 실수로 물을 끓이다 깜빡 잊은 적이 있어요. 물이 다 증발한 상태의 냄비에 하얗게 침전물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끓였어요. 물을 몇 번 더 넣었던 거 같아요. 네다섯 번 정도. 물을 한 번 끓이고 더 넣고 또 끓이고. 이 사진은 그렇게 해서 얻어진 결과물입니다. 이 장면이 흥미롭다고 생각한 게, 이 안에서 지형이 만들어져 마치 위성사진을 보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최대한 많은 정보 값을 얻을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단 생각에 이 작업을 했습니다. 이것도 포커스 스태킹으로 촬영한 12장 정도의 이미지를 다시 파노라마로 합성한 것입니다. 전체 이미지를 굳이 크롭해서 전시한 이유는 제가 생각했던 감각을 전달하기 위해 매우 큰 프린트가 필요했거든요. 전체 이미지를 작게만 본다면 너무 위성사진처럼 느껴지는 면이 우려됐습니다.

윤율리: 이번 전시의 다른 작품〈스케일 큐브 1O〉에 대해서도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스케일 큐브는 다른 사물 옆에 놓여서 그 사물의 크기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죠. 미 항공우주국(NASA) 같은 곳에서 우주의 암석을 찍을 때 옆에 두기도 하고요. 바로 그 큐브가 사진의 피사체라는 게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외곽 라인은 보시듯 벡터 이미지처럼 선명하지 않은데 저는 사진이 종합적으로 거둘 수 있는 성공, 필연적인 실패의 모든 요소가 이 한 장의 사진에 들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뜯어 볼수록 광학기술, 사진 기법, 인식론적인 인간의 입장이 맴도는 문제들이 계속 드러나요. 미술 작품을 늘 접하는 입장에서는 사진 표면이 마치 연필 소묘와 같은 착시를 준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스케일 큐브를 찍으셨는데 여기에 관해 좀 더 설명해 주세요.

〈스케일 큐브 1O〉Scale Cube 1O, 2019, Archival pigment print, 80×80cm

김경태: 포커스 스태킹은 여러 초점을 합성하는 기법으로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구현됩니다. 하나는 카메라가 고정된 상태에서 렌즈의 초점거리를 조절해 대상의 여러 면을 찍는 것, 다른 하나는 카메라 렌즈의 초점거리를 고정한 채 카메라 자체를 전진시키면서 촬영하는 것입니다. 카메라를 전진시키면서 촬영하는 경우엔 렌즈와 대상의 거리가 동일하기 때문에 모든 이미지의 스케일이 같아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가까이 있는 것이 크게 보이거나 멀리 있는 것이 작아 보이지 않는 결과를 얻을 수 있죠. 이것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휘슬에서 첫 번째 개인전 《표면으로 낙하하기》(2018)를 열었어요. 전시의 소재를 스케일 큐브로 정한 이유는 정육면체가 투시의 영향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형태의 사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스케일이 정해진 대상이기 때문에 얼마나 크고 작은지 설명할 필요도 없었고요. 저로서는 완전한 평행투시를 얻기 위한 실험이었죠. 〈스케일 큐브〉 시리즈를 보시면 큐브의 외곽선이 완전히 매끈하지 않고 약간 어긋나 있습니다. 아무리 얕은 심도의 개별 이미지를 모은다 한들, 어쨌든 그 안에서도 초점 면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에 또 투시가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완벽하게 원근법을 무시하는 완전한 표면 투시를 얻기 위해선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윤율리: 감사합니다. 김경태, 오가영 작가님과 짧은 대화를 나눠 봤습니다. 전시 전체로 확장하면 오늘 이야기한 것들과 다른 무게중심을 갖고 계신 작가님들이 계세요. 대표적으로 정희승 작가나 기슬기 작가를 언급할 수 있는데요. 비슷한 결과에 도달하는 작업, 반대로 비슷한 고민에서 출발하는 작업이 서로 상반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 재밌습니다. 가령 정희승 작가로부터 우리는 사진이 축적한 기술이나 그것을 구현하는 개인의 능력을 통해 매체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진가의 의지가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는가 관찰할 수 있습니다. 2전시실에는 기슬기 작가의 작업이 정신없이 붙어 있습니다. 기존 작업의 노선이나 생각에서 벗어난 혹은 탈주해 있는 사진들인데요. 그래서 기슬기 작가의 작업 경로를 알고 계신 분들께는 약간의 혼란이 가중될 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최근 회화들에서 포토샵이나 몇 가지 디지털 툴의 표현 양식을 캔버스 위에 다시 정교하게 재처리하는 작업들이 나타났습니다. 그와 비슷한 일을 사진의 장면으로 전환한다면 2전시실과 같은 변주가 생겨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상이한 온도를 가진 것들이 전시장 안에 펼쳐져 있을 때 우리가 흔히 사진이라 부르는 것이 얼마나 다른가, 그래서 사진 전시에 관해 무엇을 생각하던 거의 실패하거나 낙담하게 될 수밖에 없는 지점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사진을 너무 사랑하는 분들께는 다소 불경한 태도일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넓은 범주에서 우리가 사진을 다시 규정하고자 할 때 사진 그 자체를 설명할 방법은 거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