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쉬_이동기 개인전
Crash_Lee Dongi Solo Exhibition
2003.08.29.(Fri) ─ 2003.09.28.(Sun)

Crash_성장하지 않는 응시
어린이들을 위한 꿈의 동산으로 알려진 디즈니랜드가 혹시 어른들의 환상을 겨냥한 곳이 아닌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어릴 적 TV에서 우리의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었던 아톰이 영원히 성장하지 않는 어린 캐릭터로 설정되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오른다. 그 동심의 캐릭터가 텔레토비로 전이되어 어린이들의 꿈과 환상을 펼쳐내었음을 본다.

아토마우스의 해체
미키마우스는 미국 디즈니랜드의 대표적 표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 디즈니랜드란 어떤 곳인가. 어린이들에게 모험과 환희의 순간을 경험시켜주고자 찾는 이곳 디즈니랜드에서 즐거움을 얻는 이들이 과연 그 아이들뿐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디즈니랜드는 현실세계의 질서와 의무에서 벗어나 한나절의 해방감을 만끽하고자 하는 성인들을 주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디즈니랜드에 머무는 동안에는 현실의 무게를 잊을 수 있다. 가공의 인물들과 어울리며 가상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그곳에서는 크고 작은 조직이나 집단이 요구하는 규율과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어깨에 드리워진 짐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미키마우스는 현실로부터의 탈피를 가능하게 해주는 영원한 동심의 캐릭터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철권 아톰은 악(惡)과 싸워 이기는 선(善)의 상징물이다. 어떠한 곤경에 처할지라도 인조인간 아톰은 어김없이 임무를 수행한다. 이렇듯 무거운 책임의 아톰이 영원히 성장하지 않는 어린아이로 탄생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로봇 태권브이나 마징가 제트가 그러하듯 수호정신의 임무를 띤 인조인간이라면 마땅히 성인으로 설정되어야 할 텐데, 아톰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여기서 우리는 어린이의 순진무구한 정신세계를 동경하고 영원한 동심을 갈망하는 현대인의 심리를 추측해 볼 수 있게 된다.
이동기의 아토마우스는 디즈니랜드의 미키마우스와 TV 속 아톰이 합성된 생산물로, 두 캐릭터의 이중적 요소들을 담고 있다. 작가 이동기는 대중만화 캐릭터라는 외형적 이미지를 이용하여 삶을 응시하는 새로운 시선을 잡아내고 있는데, 현대인이 경쟁사회에서 겪는 심리적 불안감 또는 정서적 공황상태를 아토마우스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즉, 아토마우스는 화면 자체의 만화가 아니라 현실을 반영하고자 하는 작가의 무의식적 심리가 빚어낸 결과물이다. 그러면 아토마우스를 한번 ‘읽어’보도록 하자.
아토마우스에게서 가장 주목하게 되는 것은 복장이다. 아토마우스는 거의 항상 교복 또는 제복으로 보이는 유니폼을 입고 있다. 목 깃이 올라오고 단추가 촘촘히 달려있는 제복은 입는 사람에게 일정한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실제의 자신과는 다른 모습을 가능하게 해주는 일종의 도피성 장치이다. 제복은 개인의 취향이나 감정을 무시하는 비자율적 복장이지만, 한편으론 착용한 자로 하여금 집단에게서 소외되지 않는 존재라는 안도감 아래 실제의 나약한 자신을 잊을 수 있게 해주고 때로는 실제이상의 강인한 이미지로 변신도 가능하게 해준다. 제복은 현실로부터 피신처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실에서 도피하기를 갈망하는 아토마우스는 제복 뒤로 또 한번 몸을 숨김으로써 익명성을 보장받으려 한다.
아토마우스의 심리는 그의 제복 왼쪽 가슴에 명찰을 대신해 새겨져 있거나 목에 걸려있는 알파벳 대문자 ‘A’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A’는 분명 아토마우스(Atomaus)의 영어 이니셜을 뜻하고 있을테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순서 또는 등급을 매기는 A, B, C 의 첫 번째 순위 즉, 최고 또는 최상(Ace)을 뜻하는 문자로 읽히는데, 여기서 우리는 아토마우스의 ‘수퍼콤플렉스’ 심리를 본다. 이는 배트맨이 결코 ‘B’를 새기고 있지 않고 있으며, ‘S’라는 이니셜을 지닌 수퍼맨과 스파이더맨 중에서 유독 ‘수퍼’를 뜻하는 수퍼맨 만이 ‘S’를 가슴에 새기고 있다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수퍼컴플렉스의 또 다른 이름 ‘A컴플렉스’는 최고만을 지향하는 현대경쟁사회 시스템의 부산물이며, 성인사회에서 찾아낼 수 있는 가장 유아적 발상이기도 하다. 또한 ‘A’는 원자(Atom), 미술(Art)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 또한 힘의 논리를 구하는 파워 콤플렉스의 표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A’가 가슴에 새겨진 제복을 입고, 하늘을 나는 망토를 걸치고, 수퍼 핵주먹을 치켜 올리며 날아가는 아토마우스가 그려진 화면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심리를 찾아낸다. 바로 아토마우스의 폭력적 남성성이다. 장난기 담긴 만화캐릭터에게서 폭력이라는 단어가 의외이다. 하지만 비상(飛上)에 대한 경외심을 담고 있는 망토라든가 공격성을 드러내는 핵 주먹은 과시하고 싶고 파괴하고 싶은 욕구가 담긴, 일차적이고 단순한 감정의 결과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우쭐함도 잠시, 우리는 곧 씁쓰레한 미소를 짓게 된다. 아토마우스가 착지한 곳은 어떠한 악(惡)도 적(敵)도 존재하지 않는 곳, 파스텔 색채로 물든 텔레토비 동산(꽃밭)임을 알아차리게 되기 때문이다. 파스텔이란 원색의 틈새에 자리한 색채이다. 이는 완전하지 않은 것 또는 미숙함을 의미하며 동시에 인위적인 조작을 뜻하기도 한다. 바로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아토마우스의 심리이다.

퍼블릭 다큐멘터리아트
이동기 개인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아토마우스가 등장하는 작품들로 구성되는 아토마우스랜드와 다큐멘터리 만화작업으로 이루어지는 퍼블릭 다큐멘터리아트이다.
다큐멘터리 만화작업은 90년대 초반의 ‘MAN & WOMAN’, ‘LEFT & RIGHT’, ‘HUMAN & HERO’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서로 상반되는 개념을 한 화면에 구현함으로써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예 아니면 아니오, 옮음 아니면 그름이라는 단도직입적인 것을 선호하는 현대인의 흑백논리적 사고방식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업은 곧이어 탄생하게 된 아토마우스에 가려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는데, 서로 다른 것을 한 화면에 그려내는 이 작업은 아트와 대중문화의 결합을 시도한 것으로 보여진다.
작가는 ‘밀실폭력’, ‘크래쉬’, ‘회장의 아들’, ‘권투’ 등 연재만화의 한 컷을 확대하여 그려내기도 하고, ‘모던걸’, ‘모던보이’, ‘이상’, ‘수배자(신창원)’, ‘탈모증’에 이어 최근에는 ‘여객기 추락사고’를 제작하는데, 이들은 만화책이나 광고지 전단, 문학지, 신문, TV 등 대중매체의 발달로 쉽게 접하게 되는 시각적 이미지들을 재현한 것이다. 이 이미지들은 대중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무엇을 그린 것인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면, 대중에게 전달되는 수많은 이미지들 중에서 작가 이동기가 선택한 장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가 새로이 재현하고자 하는 이미지의 공통점이 현대사회의 시사적 순간들임을 조심스럽게 주목해 본다. 작업에 등장하는 장면이나 주인공들 대부분이 비행기 추락이나 교통사고 현장이거나 대중의 우상, 수배자 등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키는 인물들로, 주로 파괴적이고 자극적 성향이 담겨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업의 모태가 되는 현실의 시사적 장면과 이를 만화 형태로 표현하는 조합방식은 언뜻 어긋나 보인다. 그러나 심각함과 가벼움의 부조화가 이상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그 이유는 현대인의 일상 체험, 특히 우리 생활에서 겪는 실제와 허구의 다양한 충돌경험을 이동기의 작업에서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은 다른 듯 보이지만, 10만 원권 자기 앞 수표를 그린 ‘수표’도 실제와 허구가 교차하는 일련의 작업들과 그 영역을 함께 나누고 있다. 자기앞 수표가 가지고 있는 실제적 가치와 1회성에 불과한 종이조각이라는 무가치가 혼재된 상황 속에서 대중은 실제와 허구의 아이러니가 일상화된 것을 무의식적으로 경험한다. 작가는 이러한 폭력적 세상에 대한 가벼운 접근을 다큐멘터리 만화라는 전혀 의외의 방식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이러한 만화 다큐멘터리아트 작업은 아토마우스 속에 현대인의 폭력적 성향이 숨겨진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크래쉬
작가는 아토마우스에 내재된 현대인의 심리가 대중들에게 읽히고 안 읽히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그는 아토마우스 이미지를 매개로 현대미술이 대중에게 주는 거리감을 대폭 줄이고 예기치 못한 즐거움을 선사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렇게만 보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동기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아토마우스를 분석해 보면서, 아토마우스는 작가의 분신이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투영체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비록 어른의 외형을 갖추고 있지만 안으로는 영원한 동심으로 남기를 갈망하는 우리 모습 말이다. 이동기는 그간 대중들이 친숙하게 접하는 대중문화의 대표적 이미지인 만화캐릭터를 차용 복제하여, 다양하고 복잡한 일상에서 우리가 접하는 실제와 허구의 충돌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작가는 일상의 무거움을 만화라는 형식으로 재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일민미술관은 이동기의 <크래쉬>전을 마련하며, 이 전시가 한국적 팝아트를 논의해 볼 수도 있는 자리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사실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한국적 팝아트’의 개념이 제대로 거론된 적이 없다고 할 수 있는데, 이번 전시가 그 논의의 한 마당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태령 / 일민미술관 디렉터

참여작가
이동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