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How Green Was My Valley
2006.05.05.(Fri) ─ 2006.06.04.(Sun)

‘옛 것’의 바람이 분다. 패션이나 음식, 댄스에 복고열풍이 불 뿐 아니라, 외면 받다시피 한 우리의 민속과 전통에 대한 시선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복고’는 지나간 것으로 돌아간다는 말인데, 이렇게 기계화되고 편리한 세상에 살면서 왜 사람들은 옛 것을 그리워하고 다시 회복하려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옛 것이 좀 더 순수하고 좀 더 안정적이라는 기대감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하나 더 보탠다면, 무작정 전진해나가려는 치달음 속에서 한숨 쉬어가려는 본능적 행위가 아닌가 추측해본다.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작업의 의미가 무언지 고민할 기회를 망각한 채 마냥 너울대던 현대미술도 뒤를 돌아보는 자세가 더러 보인다. 일민미술관은 이번에 세 명의 중진작가-사실, 중진, 중견이라는 말이 상당히 모호하다. 그렇다고 원로라고 부르기도 맞지 않을 것 같다-들의 전시인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를 기획하여 그들이 한창 작업했던 시기의 주요작업들을 중심으로 우리 현대미술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한다.

김경인, 손장섭, 윤석구 세 사람 중 김경인과 손장섭은 회화작가이고 윤석구는 조각가인 점이 다르긴 하지만, 이들은 30-40여 년간 순수미술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과 대중에게 친근한 ‘나무’를 주제 또는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어찌 보면 구시대적인 공통점이라 할 수도 있는, 바로 이 점이 복고를 지향하는 이번 전시의 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서 찾아볼 수 있는 사실은 세 사람 모두 현실, 인간에 대한 고뇌와 삶의 흔적들을 작업에 담기 위해 고심하고 애써온 작가관을 지녔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주류에서 다소 벗어난 지점에서 남의 시선이나 관심에 크게 상관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작가들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소나무 작가로 알려진 김경인은 소나무 풍경을 그리는 풍경작가로만 알기 쉽지만, 1970-80년대에는 <문맹자> 시리즈, <공포> 시리즈 등 사회참여적인 작업을 통해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해온 작가이다. 그는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방법을 통해 스스로의 언어를 구사해왔다. 지식인이 문맹자의 모습으로 살아야 했던 현실을 고백하는 <문맹자> 시리즈는 예전에도 알려진 작업이지만, <공포> 시리즈는 먼지를 먹으며 작업실 한 켠에 있던 작품들로, 충남 당진의 작업실까지 간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작업들이다. 크지 않은 화면 속에서도 두려움의 시선이 강렬하게 전달되는 이 작업들은 언뜻 소나무 작업들과 연관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과거의 백그라운드는 소나무에 담고자 한 작가의 뜻을 새롭게 인식시켜준다. 1990년대의 강렬한 소나무 작업은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유희적이며 서사적으로 변모하며 보는 이들에게 어떤 비밀스런 이야기를 던져주고 있는 듯하다.

손장섭은 마을 어귀의 당나무나 성황나무 등, 수백 년 동안 마을의 수호신과 같은 존재로 사람들과 함께 해온 나무들을 그려왔다. 화면 가득히 꽉 찬 그 형상들은 마치 사람을 압도할 것 같이 기를 뿜어내고 있는데, 그 기운 역시 작가가 지난 시기에 해온 작업을 가늠케 한다. 고교시절에 4.19혁명에 대한 인상을 <사월의 함성>으로 남긴 것을 시작으로 그는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에 끊임없이 매달려 왔고, 1980년의 광주의 비극은 그를 당시 미술운동에 더욱 깊이 관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 특유의 독특한 화면분할 방식으로 사실들을 서술하는 그의 화법은 시각이미지를 통한 역사의 기술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그 시대의 미술운동을 함께 했던 많은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손장섭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풍경과 자연에 관심을 쏟기 시작하면서 신기神氣가 느껴지는 나무 작업에 몰두하게 되었다. 이데올로기화한 작업들 틈틈이 보이는 그의 개인사적 작품들은 민중미술작가의 잘 알려지지 않은 면모를 알아가는데 작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마지막 작가 윤석구는 위의 두 작가와 달리 나무를 주제로 한다기보다는 나무를 소재로 하는 작가라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나이가 가장 적고 또 상대적으로 가장 덜 알려진 작가이기도 하다. 전북 익산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은 나무가 울창한 산에 둘러싸여 있는 곳으로, 주변 벌목현장에서 사온 다양한 두께의 나무들이 일부는 잘 다듬어져서, 일부는 손대지 않은 채 널려있었다. 작가는 최근 작업들은 <어린왕자>를 포함해 깊은 스토리 없이 시각적이고 형상적이며, 보는 이들에게 환희를 전달할 수 있는 작업에 충실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이 지긋한 작가의 컬러풀한 나무 형상을 단지 그 자체로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예전의 <인간의 굴레> 시리즈나 <신종新種> 시리즈는 억눌린 인간상에 대한 처절함을 담고 있으며, 그 이면에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비롯된 변태적이고 기계화한 현실에 대한 부정적 측면을 담고 있는데, 최근에는 과거에서 벗어나 순수한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심정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세 작가들의 작품은 신작을 포함하되, 주로 그들의 대표적 작품세계와 그 뒷면에 가려진 모습들을 찾아내면서 작업행로를 되짚어가는 여정이다. 어쩌면 세상에 제대로 얼굴 드러내지 못하고, 혹은 잠시 선보였더라도 금세 잊혀져 버렸던 옛 작품들이 새롭게 빛을 보는 의미가 더해질 수도 있겠다. 이들이 어우러져 세 작가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또한 예술의 길을 쫓는 많은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의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아울러 그들의 계곡에 푸르름이 지속되길 바래본다.

김태령 / 일민미술관 디렉터

참여작가
김경인, 손장섭, 윤석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