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허 정해창선생 탄생 100주년전 ‘벽癖의 예찬, 근대인 정해창을 말하다
Talking a Modernist, The Devotee of the Mundane Jung Hae Chang
2007.11.09.(Fri) ─ 2008.02.03.(Sun)

무허 정해창선생 탄생 100주년전 ‘벽癖의 예찬, 근대인 정해창을 말하다’
제1부 사진인문학을 열다.
제2부 서도전각의 길을 가다.

이 전시는 1929년 우리나라 최초로 ‘예술사진개인전람회’를 열었던 무허(舞虛) 정해창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개최하는 기념전시회이다.
1907년에 태어난 정해창은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독일어를 전공하면서 그림과 사진을 배웠으며, 금석학 연구를 위해 중국유학을 다녀온 근대지식인의 한 전형이었다. 그는 해방 이전 사진가와 서도전각가로 활동했으며, 해방 이후에는 금석학 연구 및 불교미술사 연구에 전념하면서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본 전시는 이처럼 다양한 예술 및 학문 연구 활동을 한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 근대지식인의 한 전형을 살펴보고, 딜레탕트의 한계를 넘어 취미를 벽의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 그의 문화예술 관련 작품들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
이 전시는 정해창의 예술활동 영역에 따라 크게 2부로 나누었다. 제1부 ‘사진인문학을 열다’는 1929년부터 1939년까지 사진가로서 활동한 시기의 사진작품들을 중심으로 구성하였으며, 제2부 ‘서도전각의 길을 가다’는 1941년 을 열면서 서예가와 전각가로 활동했던 정해창의 서예•전각 및 각석 작품들로 꾸몄다.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정해창의 빈티지 프린트는 그의 사진 활동 시기인 1929년부터 1939년까지 10년간 작업한 사진들 중에서 선별한 것으로, 그 당시 실물사진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근대사진사연구에 있어 소중한 시각자료이다. 나아가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이 촬영한 사진은 민속학분야에서 송석하가 촬영한 것이 유일할 정도인데, 500여 점에 이르는 정해창의 사진자료는 근대기록문화유산으로도 손색이 없다.
또한 그가 남긴 5권의 불교미술사진첩에는 1953~1957년 사이에 전국을 답사하면서 촬영한 총 2,483점의 불교미술 관련 사진들이 내용별로 정리되어 있는데, 사진으로 읽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라 할 정도로 귀중한 시각문화유산이다.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전통문화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한 정해창은 평생 ‘조선적인 것’을 쫓아 사진에서 서예와 전각으로 그리고 우리나라 불교미술 연구의 길로 걸어갔다. 그 과정에서 그가 성취한 예술작품과 연구 성과들은 우리에게 문화적 자산으로 남겨졌다. 이번 전시가 그가 남긴 자료들을 발굴•정리•복원하여 정해창이라는 근대적 텍스트를 다시 읽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제1부 사진인문학을 열다, 무허舞虛 정해창
1929년 첫 번째 전시 이후 10여 년간 사진가로 활동한 정해창은 나라 잃은 식민지 지식인이라는 자의식 속에서 전통, 민족, 조선적인 것에 주목하였으며, 사진을 통해 근대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전통의 이미지를 표출하는데 노력했다. 그는 주로 인물화, 풍속화, 산수화, 점경인물화, 화조영모화 등 전통회화의 화목과 양식에서 ‘조선적인 것’을 찾으려 했다. 따라서 제1부는 전통회화의 화목에 따라 정해창의 사진을 분류했으며 여기에 정물, 자화상, 문화재를 보태 총 8개 부분으로 구성하였다. 한편 이번에 처음 발굴, 공개된 5권의 불교미술사진첩은 그의 예술사진과 함께 우리나라 근대기의 중요한 역사기록물로서, 사진인문학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제2부 서도전각의 길을 가다, 수모인水母人•물아재物我齋 정해창
1941년 화신백화점에서 개최한 ‘서도전각전’은 그의 첫 번째 사진전과 마찬가지로 전람회 형식의 개인전으로는 매우 선구적인 전시였다. 근대 전각의 양 대가였던 위창 오세창과 성재 김태석에게서 사사한 그는 이 전시를 계기로 자신의 스승들처럼 서예가이자 전각가이자 금석학자의 길을 걸었다. 따라서 제2부는 서도전각가로 활동했던 정해창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 서예, 전각, 각석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구성하였으며, 그가 참고했던 서적들과 작품제작에 사용된 서예 및 전각 도구 등 관련 유품들을 함께 진열하여 이해를 구하고자 했다. 글로 쓰거나 새긴 명문의 내용을 통해 그의 미의식과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정해창의 서예 및 전각 작품은 그가 사진에서 표출하고자 했던 바를 이해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이경민 / 객원기획, 사진아카이브연구소 연구원

근대인 정해창
1929년 3월 20일자 신문의 한 면에 ‘예술사진전람회’라는 제목으로 사진이 한 장 실려있다. 벽에는 마치 유럽의 살롱전시 모양새가 나게 사진 액자들이 걸려있고 이를 감상하는 중절모 신사들의 진중한 모습이 보인다. 80여 년 전 이들에게 사진은 무엇이었으며 또 사진을 감상하는 일은 어떠한 의미였을까.
정해창선생은 일본 유학 길에 사진기라는 경이로운 물체를 접하고 귀국한 후 사진작업에 몰두하며 조선 최초의 사진개인전을 열었고, 우리나라 사진사의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하기에 이른다.
당시 여건을 감안했을 때, 선생의 작업이 상당히 많은 양의 풍경, 인물, 문화재를 담아냈다는 사실은 사진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사진을 통해 조선의 시대적 삶을 기록하려는 의지의 발현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의 사진은 향수와 서정을 자극하는데 그치지 않고, 다가오는 세계에 대한 흥분과 기대를 과학적인 방식으로 접근해 간 것이다.
그는 타고난 예술가였을 것이다. 그의 손이 닿는 것은 문화, 바로 그것이었다. 예술사진을 접은 정해창선생은 서예와 전각에 전념하여 일상문화의 또 다른 면을 채워나간다. 자신의 취미 벽癖을 공공화公共化하고자 했다.
또한 방대한 서적을 모으고 이를 통해 습득한 동양미술사나 예술사진에 대한 지식을 대학 강의에서 많은 이들에게 전달했으며, 불교미술에 관련한 사진을 찍어 정리하는 등 문화는 순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배움과 연구의 결실이며 이를 통해 타인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임을 깨닫고 실행했다.
근대의 인문적 시각문화를 되짚어 현대를 알고자 노력해온 일민미술관은 무허 정해창선생 탄생 100년을 맞아 벽癖의 예찬-근대인 정해창을 말하다 전을 열면서 한 개인이 당시에 일으킨 센세이션과 후대에 미친 역량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전시가 우리의 일상문화가 나아갈 길에 작은 지표를 제시할 수 있길 기대한다.

김태령 / 일민미술관 디렉터

참여작가
정해창

주최_일민미술관
기획_사진아카이브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