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무명씨/전영찬 개인전
Yee Sookyung/ No Name/ Chun youngchan Solo Exhibition
2007.09.14.(Fri) ─ 2007.10.21.(Sun)
Exhibition Hall 1,2,3

1층 ‘Earth, Wind & Fire’_이수경 개인전

작가에게 물었다. 미술은 무엇 인가. 작가가 해석하는 미술의 개념은 무엇이며, 이 개념이 자신의 작업에 어떻게 드러나고 보여 지고 있으며, 또 작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일민미술관은 도자기 파편을 모아 붙이는 이수경, 미적 사물들을 수집하는 무명씨, 연속된 것을 조합하는 전영찬 등 세 작가에 의한 세 개의 전시를 함께 기획하며 작가, 작업, 미술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작가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파괴되어버린 백자 파편들을 가져다가 한 조각 한 조각을 이어 붙여서 새로운 형태로 창조해낸다. 애당초 조선백자를 재현하기 위해 구워졌으나 가마에서 나오자마자 도공에 의해 부수어진 도자기 조각들은 이수경의 손에 의해 다른 의미의 완벽성에 도전하는 것이다. 끝이 어디에 있는지 가늠하기 힘든 일련의 작업은 애당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미술이었듯이 이수경은 자신만의 행위언어로 잠재된 의식을 드러낸다. 작가는 모든 것을 감각에 맡길 뿐이라 하였으나 그 우연한 종말은 우리가 구하고자 하는 절대적 가치의 의미가 무엇인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

2층 ‘야릇한 환대-Odd Welcome’_무명씨 연출전

무명씨. 미술가에게 이름은 무의미하다. 미술이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찬양되는 것이 무의미한 것처럼 미술가 또한 그러하다. 무명씨에게 미술이란 삶의 곳곳에 자리한 경험적 체취에 다름 아니다. 무명씨는 이 전시에서 연출가이자 수집가이자 실천가로 참여하며, 전시는 크게 수집과 초대의 형식으로 구성된다.
버려진 사물들은 이미 미술이었던 적이 있었다. 거실이나 안방에 마치 그 집안의 가풍을 내세우기라도 하듯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걸려 있었던 그림들, 침대머리에 장수와 화목의 상징으로 새겨졌던 나무 공예물품들, 부귀영화를 소망하는 화려한 자개물품들이 한때는 미술이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공터나 쓰레기봉투, 옆에 버려진 채 뒹굴어도 누구 하나 눈여겨보지 않는다. 무명씨는 이들에게 ‘수집된 미술’의 형태로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끌어들임으로써 미술이라는 가치관에 물음을 던진다.
그렇다면 무명씨가 생각하는 미술가는 무엇일까. 아마도 세계 최초일 지도 모를 수묵SF만화를 집필 중인 김모씨, 음악과 미술을 경계를 가지고 노는 인디밴드의 보컬리스트 조모씨, 보길도에서 혼자 그림을 배우는 김모 할아버지, 평범한 직장에 다니며 삶의 전환기에 미술치료와 화실생활을 알게 된 여성 이모씨, 이들이 바로 미술가들이며 또 다른 무수한 무명씨들이다. 무명씨는 미술가로 불리지 않은 4명의 미술가들을 초대하고 미술가로 불리는 4명의 실천가들의 힘을 빌려 각각의 개인전을 마련함으로써 미술이 미술이라는 이름을 버린, 격식을 채 갖추지 못하고 벌어지는 미술들을 제시한다.
관람자라는 또 다른 무명씨들은 ‘수집’과 ‘초대’의 장(場)을 돌아보며,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었던 미술의 실체에 대해, 아울러 이제껏 미처 깨닫지 못했던 미술-그것이 자신의 것이던 남의 것이던 간에-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3층 ‘Inside Out’_전영찬 애니메이션전

동시에 전시하는 세 개의 전시 내용을 ‘모으다’ 또는 ‘수집하다’ 로 정하여 세 명의 작가를 선정하면서, 애니메이션 전시를 세 전시 중 하나로 구성했다. 애니메이션은 컴퓨터 그래픽 등 테크놀로지의 도움으로 이제 더 이상 미술의 영역에 머무른다 할 수 없지만, 그 근본은 단순하게 생략된 풍자화(風刺畵)라는 미술이었다. 애니메이션 작가 전영찬의 작업을 보여주면서, 종합적 결과물로써만이 아니라 풍자화된 작업과정의 컷들이 연속적으로 구성되는 단계를 보여주는 방식을 취했다.
애니메이션 작업에서는 그림의 개념을 뛰어넘어 미술의 진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작은 스케치가 이미지화되고 테크놀로지를 통해 일정한 움직임이 주어지면서 그것은 단순히 움직이는 그림의 개념을 뛰어넘어 보다 넓은 가능성의 시작이 된다. 이 전시에서는 전영찬의 작업으로 등 6개의 영상물이 선보인다. 작가는 사회적 경험이나 일상생활의 작은 에피소드를 작업의 모태로 삼아, 인간에게 내제된 심리를 표면으로 끌어낸다. 한국과 미국에서 공부하고 현대 미국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에게 두 사회의 문화적 충돌 또는 소통의 부재는 작업에서 주요한 테마로 작용하기도 한다.
전영찬 작업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단순한 동선 처리와는 달리 시니컬한 시선으로 명쾌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최근작 중의 하나인 에서 작가는 극적인 반전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동시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아이디어를 생산해 낸다. 이라는 고양이와 쥐가 등장하는 동물우화는 문화적 배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정하게 되는 어떠한 심리적 동질감에 대한 작업이다. 결국 미술은 보편성에 대한 시각적 발언이어야 하지 않는가…작가는 묻는다.

김태령 / 일민미술관 디렉터

참여작가
이수경, 무명씨, 전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