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시각 3_황우철 개인전
New Vision 3_Hwang Ou-chul Solo Exhibition
1998.04.29.(Wed) ─ 1998.05.13.(Wed)

‘사이’의 미학과 이름없는 넋을 위한 진혼곡(鎭魂曲)
황우철의 작품은 화면이 품어내는 격렬한 호흡과 색채의 향연(響宴)으로 인해 일순간 우리의 시선을 가다듬게 한다. 그의 작품이 모두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최근의 근작(近作)들에서 이러한 경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어쩌면 자신의 내면에 기거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와 본능적 유희충동이 빚어내는 강렬한 파열음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황우철의 화면을 단순히 즉흥적 감흥과 무질서한 붓놀림으로 편성된 파편화된 그림으로 볼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의 화면에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혼돈공간 속에 내재한 어떤 미적 질서와 그의 주제의식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화면에 내재하고 있는 카오스적 세계와 그 원초적 핵으로서의 작가의 로고스를 탐구하는 일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그의 작품경향을 흔히 말하는 오토마티즘 (자동기술법,automatism)이나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이 자주 인용했던 ‘선적(禪的) 경지나 우연성(偶然性)의 미학’으로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바탕화면의 밑그림부터 맨 나중에 덧칠된 형상까지 표현의도와 계획 속에서 조직되고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리조각이 깨지는 것과 같은 우연적 사건과 같은 문맥에 그의 작품을 갖다 놓을 수는 없다. 그보다는 그의 격렬한 붓놀림과 색채적 충돌을 유발하고 있는 필연성의 정체를, 무질서적 화면을 지배하고 있는 뿌리와 같은 미적 질서를 규명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그 ‘필연성’의 정체가 무엇일까. 필자는 그것을 황우철의 작품의 궤적에서 드러나고 있는 ‘사이’의 미학과 ‘이름없는 넋을 위한 진혼곡(鎭魂曲)’ 이라는 큰 틀로 해석해 보고자 한다.

‘사이’의 미학
그의 화면 속에는 일상과 삶, 죽음과 영혼, 역사와 현실, 동양의 전통과 서양의 미학 등에 관한 사색들이 파동치고 있다. 이 이분법적 혹은 가까운 양자관계의 간극, 다시 말하자면 ‘사이’에 대해 그의 작품은 말하고 있으며, 그러한 문제에 대해 시각적 의미부여를 시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선은 그의 작품은 문자와 형상 사이에 관한 하나의 의미체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 실례는 (1997), (1996), 1995), (1995), (1995) 등에서 여실히 목격된다.
도안화된 글씨나 문자들은 화면의 구성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으나, 그 뜻을 아는 우리로서는 그가 무언가 관습적 표상들이나 이질적 기호체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적 의미들을 조명하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특히 과 같은 작품에서는 60년대 시절에 유리창에 부착된 것과 같은 서툴게 도안된 글씨들을 통해 그의 한국미술에 대한 단상을 짚어보게 한다. 즉 “한국미술은 마치 교복을 입고 모자를 쓴다. (작가노트 중에서)”에서 엿볼 수 있듯이, 획일화된 교육과정에서 자신의 욕구를 분출하려고 했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회화로 전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향의 그의 작품 속에는 치기와 어설픈 욕망들이 출구를 찾기 위해 부단히 부유하는 형상들과 함께 어우러져 있으며, 여기서 문자는 회화의 메타포로 해결할 수 없는 직설적인 표현에 다름 아니다. 그는 간혹 낙서와 같이 혹은 일기와 같이 어떤 이야기를 화면에 그려내고 있는데, 이것은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동양회화의 본질을 서양회화의 어법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즉 시서화일체(時書畵一體)라는 동양예술론에서의 화가로서의 덕목과 정신을 현대적으로 구현하려는 그의 새로운 조형의지로 보이는 것이다.
마당가 저만치에 나무가 있다. 아무도 잎을 달아라 열매를 맺어라 얘기하지 않아도 나무는 꽃을 피우고 가을엔 잎을 떨군다.  사람들의 법과 규정들은 날로 그 부피가 두꺼워져서 그것을 만든 사람들조차도 몇 날이고 펼쳐보아야 기껏 아는데. 사람은 햇빛과 비와 바람소리와 더불어 사는 데는 가장 부적합하다. ( 작품에 쓰여진 글을 발췌함.)
이 작품에서 그는 시적 상상력과 함께 비록 한글로 표현된 글씨이지만, 글씨 자체를 하나의 회화적 도상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나무는 붓으로 그려진 것과 같은 간결한 필치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황우철의 작품들은 문자와 형상을 결합했던 쟝미셀 바스키아(Michel Basquiat)의 그림과 같은 자유로운 낙서화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황우철의 화면에서는 서양화의 올오버 페인팅과 같은 전면회화(全面繪畵)가 아니라 동양화의 수묵화법적 여백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것은 개념과 형상, 색채와 공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조형적 사색들로서 동양회화의 본질을 서양회화의 어법으로 새롭게 형상화하려는 그의 표현적 특징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다음으로 황우철의 작품에서는 삶과 죽음, 소멸과 생성, 역사와 현실, 인간과 사물 사이에 존재하는 단절된 체험들을 하나의 영속적인 끈으로 연결 지우려 한다. 그것은 곧 그의 화면을 전체적으로 지배하는 선이나 미묘한 색채를 통해 가시화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작품경향은 대체로 (1994)나 (1994), (1994) 연작에서 목도된다. 특히 의 경우 명상적이고 암울한 색조의 바탕화면을 질주하는 선의 흐름들은 일종의 영적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작가에 따르면, 자신이 그리고 있는 선은 유기체의 흐름일 뿐만 아니라, 탯줄과 같은 생명적인 관계, 죽음을 연결 짓는 끈과 같은 의미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선적 표현은 유기체의 삶을 생명의 흐름이자, 영혼의 메신저(messenger)와 같은 역할로 볼 수 있다. 에서도 옅은 색조의 무미건조한 바탕에 여인의 모습을 크로키 하듯이 그려내고 다시 그 위에 옅은 청록색의 색 면의 흐름을 부유하듯이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우리는 생성과 소멸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영적 흐름을 감지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사이’에 관한 황우철의 사색은 동양회화의 소재들을 과감하게 도입하면서 색 면 공간과 선적표현 사이에 동요하는 어떤 음률을 생성하고 있다고 보여진다는 점이다. 특히 (1994)나 (1997)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줄줄 흐르는 물감 사이로 언뜻 비치는 불분명한 이미지들은 동양화의 주된 소재들이다. 시리즈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각각 , 등으로 재해석하여 영문자와 선적 흐름을 결합하고 있으며, 시리즈는 , , , 등으로 구분하여 독창적인 의미들을 복원해 내고 있다. 특히 에서 황우철은 덧 칠과 반복으로 응결된 화면과 이를 다시 긁어내는 요철의 기법을 동원함으로써 음양의 관계를 생성해 내고 있다. 드러나는 것과 감추어진 것 사이에 존재하는 동양의 정신성을 그는 덧없는 화면의 복잡성을 초월하는 각 소재들이 지닌 상징적 의미들을 재해석해 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1995) 1997) (1997)연작에서 그는 절화풍의 산수화를 차용하여 화면에 포치시키고 새, 물고기, 나무 등을 병치시킴으로써 현대적으로 해석된 산수화의 한 전형을 새롭게 구현하고 있다. 서양어법의 틀 속에서 동양의 정신성을 내용으로 하여 화면을 구축하고 있는 그의 근작들은 동양과 서양의 미학을 공존시키고 양자의 미학적 차별성을 통합적으로 조율하면서 현대적 조형언어로 재구성하려는 황우철의 회화적 실험정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름없는 넋을 위한 진혼곡
최근 황우철의 작업에서는 조금 다른 변화의 징후들이 목격된다. 그것은 (1997)나 (1997), (1997) 연작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그간의 회화적 실험을 종합하면서 순환하는 원형이나 선적 구성이 보다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들은 대체로 성장이 완결되지 않은 미생물의 생물학적 반응과 같이 유동적인 흐름으로 충만 되어 있다. 이미 물감이 캔버스에 고착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의 화면은 물리적 생장을 멈추지 않은 듯이 보인다. 그래서 황우철의 행위에 의해서 캔버스에 덧칠된 물감들은 명확한 형상을 드러내지 않지만, 어떤 암시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상징적 의미들로 읽혀진다. 그것은 어쩌면 애드가 앨런 포의 추리소설 에서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복선이나 혹은 비밀의 기호들처럼 우리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기서 잠깐 황우철의 회화적 궤적을 더듬어 볼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가 1980년대 후반에 그려졌던 연작은 불안한 시대상과 질곡으로 가득 찼던 정치적 독재와 사회적 현실에 대한 지인의 반항으로 보여진다. 당시의 그의 그림들은 거대한 제도와 이데올로기의 미혹(迷惑)속에서   한국사회에 대한 저항의식을 ‘의병장’이라는 대상을 통하여 은유적으로 표명하려 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되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군대를 제대한 후, 당시 캠퍼스를 짓누르고 있었던 끊임없는 최루탄 가스와 학생시위를 보면서, 예술가 이전에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발 딛고 있었던 암울한 현실에 대한 항거심의 발로였던 것이 아닐까. 그는 군부에 의해 유린당한 광주쟁의 기억과 1980년대 한국사회가 안고 있던 독재의 그림자를 화면 속에서 용해시키고 증언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이 시기, 그 그림은 그만큼의 무게로 어둡고, 익명의 표정 없는 얼굴들은 충혈된 눈빛들로 표현되고 있다. 어둡고 칙칙했던 화면빛깔이 조금은 밝은 빛깔로 대체된 것은 대체로 미국에서의 유학시절과 그 이후 작업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결행은 그의 자유분방한 기질에 윤기 있는 활력을 제공 하면서도 내적 성찰을 가질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시기였던 듯 하다. 황우철의 화면은 점차 두터운 어두움에서 벗어나, 점차 화면에 색채의 생동감이 살아 오르고 있음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미국에서 그렸던 인물화와 정물들은 격렬한 붓질과 선정적인 색채로 조율되어 일면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회화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연작으로 그려졌던 80년대 후반 작업은 대체로 인간의 절규와 고통으로 얼룩진 상처받은 인간의 모습들로, 우울했던 시대의 표상처럼 우리의 시선에 깊숙이 날아와 꽂히고 있다. 90년대 들어서서 그가 펼치고 있는 작업들은 유기적인 선과 불분명한 형상들이 조합되거나 중첩된 자유로운 회화성을 추구한 작품들 이룬다. 그는 이러한 작품들에서 앞에서 언급한 선(線)의 표현을 발전시켜 나가면서 현실과 이상, 이승과 저승, 삶과 죽 생성과 같은 서로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미지의 연결 고리로 의미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 미지의 선을 배태시키는 화면 바탕에는 대부분 불확실한 형상들-예를 들면, 식물, 신체의 기관, 일상생활에서 대할 수 있는 잡다한 물건 등-이 부유하고 있는데, 그러한 분절적이고 불확실한 대상들은 그의 내면에 자리한 표층에 떠있는 기억과 회상의 체험적 이미지들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규칙이 없는 게임과 같이 혹은 미세한 입자를 과학자의 시선과도 같이 유아적(幼兒的)이고 편집적(偏執的)으로 드러나 있다. 황우철은 회화 궁극적 정점을 곧 ‘자유의 정신’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나아가 그는 색 면과 선의 관계, 보색의 색 면이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공간감의 창출을 통해 평면회화가 가질 수 있는 어떤 미학적 가치와 회화의 새로운 비전을 탐구하고 있다. 그것은 순수한 회화, 그 자체로 환원되는 지점에서 그가 표현할 수 있는 물질을 넘어선 정신의 지평이기도 하다. 그는 철저히 동양적인 감성과 현실적인 시선, 부정할 수 없는 회화조건 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또한 그것에 부응하고자 한다. 그런 탓에 그가 장악할 수 있는 화면이 너무 작다는 생각을 하는 듯 하지만, 실상 그의 화면은 울창한 계곡 속의 거대한 폭포가 내뿜는 호흡을 느끼게 한다. 어차피 물질과의 결합일 수밖에 없는 캔버스와 물감 사이에서 자유로운 그림, 이성을 벗어난 상태에서의 감성으로 충일된 화면을 그는 재생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물질주의로 충만한 우리의 현실에서, 그가 바라보고 있는 동양의 사유정신과 내밀한 정신의 지평에서 순수한 색 면이 빚어내는 음악적 울림 속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황우철은 이처럼 역사의 한 장을 장식했던 비운의 사건들, 이름 없이 스러져 갔던 익명의 얼굴들,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는 일상의 사색과 죽음의 문제, 사물이 지니고 있는 진실한 내면의 소리를 찾기 위해 분을 들고 있다. 그래서 황우철의 화면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이름 없는 넋들을 위로하기 위한 진혼곡처럼, 저 남도지방에서 들을 수 있는 악보 없는 소리처럼 삶을 노래하는 어떤 자유의 가락을 발견하게 되는 지도 모른다.
일민미술관 학예연구팀

참여작가
황우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