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립희롱_김해민
Media Installation_Kim Hae-min
2003.03.21.(Fri) ─ 2003.04.20.(Sun)

유령의 집
오버걸의 집은 흔히 ‘유령의 집’으로 불린다. 유령의 집? 궁금하지? 무대뽀는 또 누군가. 우덜 기자들이 도저히 취재하기 어려운 사건(?)만 골라 밀착취재를 감행하는 수습기자 아닌가. 무신 일인지 몰라도, 아니 무대뽀의 명성이 자자해서인지 오버걸이 대뽀를 그녀의 집으로 초대했다. 그래서 오늘 열 분들을 위해 그 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오버걸의 옷(집)을 벗겨주겠다. 긴장되지? 긴장하시라.
대뽀는 오버걸이 안내한 거실의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소문으로만 듣던 쭉빵걸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만날 줄 몰랐다. 넘 흥분한 나머지 ‘수다’로 불리는 대뽀, 암 말 못하고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오버걸은 진열장 센터에 자리잡고 있는 TV를 향해 리모콘 버튼을 눌렀다. TV 화면은 파란 하늘로 변했다. 그 파란하늘에 갑자기 망치가 등장하더니 바로 그 TV화면을 꽝! 하고 친다. 대뽀는 마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TV를 보았지만 사실 갑자기 출현한 망치가 TV화면을 ‘꽝!’ 하고 쳤을 때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대뽀 얼른 자세를 잡고 태연한 척 포즈를 취했다. 근데 이게 무슨 일인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날라든 망치는 계속해서 TV 화면을 치는 것이 아닌가. 꽝! 꽝! 광! 저러다 TV 화면이 깨지면 어쩔라고…라는 상상을 대뽀, 당근 하지 않았다. 근데 이게 무신 일인가. TV화면을 반복해서 치던 망치는 어느 한 순간 TV 화면을 깨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그 TV 화면이 ‘쨍그랑!’ 하고 깨지자마자 TV는 ‘찌지직’ 하면서 스파크를 일으키더니 꺼져버렸다. 헉! 갑작스런 일에 당황한 대뽀, 오버걸을 바라보았다. 근데 오버걸, 대뽀에게 미소를 날리면서 담과 같이 씨부렸다. 쫌만 기다리세요.∧∧ 오버걸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커져버렸던 TV가 다시 커지면서 이전의 파란 하늘을 화면 가득 채웠다. 그리고 망치가 등장했다. 글타! 열 분들이 이미 감 잡았듯이 TV화면은 대뽀가 보고 있는 실재의 화면이 진짜 깨진 것이 아니라 유리가 깨진 것을 비디오로 담은 것이다. 그럼 전원이 꺼진 건? 오버걸 왈, 호호호…전원도 진짜 꺼진 것이 아니라 비디오상에서 꺼진 거예요. 그러니까 전원이 커진 상태를 비디오 담은 것이죠. 대뽀님은 그걸 보고 진짜 전원이 꺼진 것으로 착각한 것인 셈이죠. 갑작스런 일을 당해서인지 대뽀는 갈증을 느꼈다. 테이블에는 와인이 있었지만 잔이 없었다. 대뽀는 오버걸에게 와인을 한 잔 마셔도 되겠냐고 물었다. 오버걸 왈, 당근이죠. 참, 잔은 저기 진열장에 있어요. 대뽀는 와인잔이 있는 진열장으로 다가갔다. 헉! 근데 이게 무신 일인가? 진열장에 있는 5개의 잔 중 3개의 잔에 무신 영상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트루만과 스탈린이 건배를 하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6•25전쟁시 UN회의 장면 그리고 UN에서 소련 대표가 미국에게 항의하는 장면이 동영상으로 그 3개의 유리잔에 각각 ‘담겨져’ 있다. (여기서 ‘담겨져’ 있는 건 영상이 잔 안에 담겨진 것을 뜻한다. 마치 와인이 담긴 것처럼) 그리고 어디서인지 모르겠지만 잔이 부딪히는 소리에서부터 연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무신 소린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대뽀의 어깨를 잡는 것이 아닌가. 대뽀 하마트먼 기절할 뻔했다. 글타! 오버걸이었다. 도대체 잔 속의 영상은 어떻게 등장한 것이냐는 대뽀의 물음에 오버걸은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대뽀 천장을 보니 프로젝트가 3대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로 영상을 잔에 투사한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입체적 영상을 잔 속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혹 영상이 투사된 잔 안에 무신 액체라도 넣은 건 아닐까? 오버걸 왈, 잔을 자세히 보세요. 그 잔은 빈잔이예요. 하지만 영상이 투사된 부분 그러니까 잔 안쪽면을 에칭(간 유리)처리했어요. 그래서 둥근 잔 속의 영상이 서로 간섭하면서 입체적 효과를 드러내는 것이죠. 말하자면 잔 안에 투사된 영상은 평명적 영상이지만 둥근 잔으로 인해 입체적 영상이 나타난다고 말예요. 대뽀, 넘 신기해서 그 잔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근데 대뽀가 몸을 낮추어 잔을 보니 입체적 영상이 그만 찌그러져 버렸다. 그러나 대뽀가 다시 일어나 그 잔을 보니 다시 입체적 영상을 드러냈다. 오버걸 왈, 이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칵테일 잔의 위치예요. 특히 높이죠. 만약 이 잔을 이렇게 놓으면… 오버걸은 잔을 진열장 밑으로 가져다 놓았다. 대뽀가 위에서 내려다본 잔 안의 영상은 찌그러져 버렸다. 글타! 이 작업은 직립해 서 있는 인간의 가시영역의 한계를 이용한 것이다. (아, 씨바. 지면이 한정되어 있어 언급을 비약할 수밖에 엄따! 이해 바란다) 오버걸은 대뽀를 그녀의 방으로 안내했다. 그녀의 방은 깜(깜한)방이었다. 아니다. 대뽀와 오버걸이 그 방을 들어서자 사방에 순차적으로 문자들이 출현한다. 각각의 벽면에 등장한 문자들은 한자로 ‘直立戱弄’이다. 직립(直立)은 알겠는데 ‘戱弄’은 모르겠다(이럴 줄 알았으면 한자 공부 좀 하는 건데, 쩝!). 그렇다고 쪽팔리게 오버걸에 ‘戱弄’이 모냐고 물을 수도 없고…근데 갑자기 누군가(유령) 그 영상에 등장해 입김을 불어 ‘直’를 날려보내고 손가락으로 무신 글자를 쓴다. 아, 그건 바로 입김으로 날라 간 ‘直’를 허공에 손가락으로 ‘직’이라고 한글로 쓴 것이다. 그리고 다음 벽면에 등장한 ‘立’도 입김으로 날라 가고 유령(?)은 허공에 손가락으로 ‘립’이란 글자를 써놓는다. 대뽀, 긴장하면서 그 다음 화면을 주시했다. 왜냐구? 이번엔 분명 ‘戱弄’을 한글로 적을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유령은 그 각각의 문자를 허공에 손가락으로 각각 ‘희’와 ‘롱’으로 썼다. 직•립•희•롱!
씨바, 그 유령이 대뽀를 희롱한 것이다. 마치 ‘너, 이 한자(戱弄) 모르지? 내가 갈쳐 줄게’식으로 말이다. 그 유령은 언어문자로 생활하는 우덜이 그 언어문자를 알지 못하면 한 마디로 ‘병•신’ 취급받는다는 걸, 즉 우덜이 만든 언어문자가 오히려 우덜을 지배하고 있다는 언어문자의 허를 꼬집는 것이 아닐까? 이번엔 불길한 징조를 띤 하늘이 나타나고 벌레들이 등장했다. 근데 대뽀에게 이딴 궁금증이 발생했다. 도대체 사면에 투사된 영상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오버걸은 다시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천장엔 프로젝트가 4대가 아니라 한 대만 설치되어 있다. 아니, 어케 프로젝트 한 대로 4개의 다른 영상을 투사할 수 있단 말인가? 오버걸 왈, (그녀의 방 가운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저기 모가 있죠? 저건 거울들 이예요. 4개의 거울이 동서남북으로 45도 정도 각도로 세운 것이죠. 따라서 천장에 설치된 프로젝트에서 투사된 영상이 저 거울들의 반사에 의해 사방으로 분리되어 각 바닥에 설치된 스크린에 투사된 거예요. 말하자면 하나의 영상이 4개로 나누어진 것이죠. 참, 경제적이죠. 호호호. 지면의 한계로 열 분들에게 왕 실감나게 유령의 집을 보도하지 못한 것이 영 찝찝하다. 그래도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적어도 대뽀가 보기에 작가 김해민은 자기 언어를 가지고 작업하는 작가다. (자기 언어를 가지고 작업하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김해민 작품의 근저엔 흐르는 사상은 무(巫)이다. 대뽀는 그를 이곳에서 ‘유령’으로 표기했지만, 그는 엄밀한 의미에서 (예술적) 무당이다 (그런 점에서 김해민의 전작은 ‘비디오 설치작업’이라기보다 ‘비디오 퍼포먼스’로 불러야 정당하다고 대뽀는 생각한다). 따라서 ‘유령의 집’은 그러니까 (예술적) ‘무당의 집’이 되는 셈이다. 거럼 김해민의 비디오 작업은 기계-무당(machine-mudang)이 아닌가?
류병학 / 비평가

참여작가
김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