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139_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
Project 139_Branching Paths
2004.05.12.(Wed) ─ 2004.05.30.(Sun)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展은 공간에 대한 환상적인 이미지를 모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동화와 신화에서부터 미신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몇몇의 환상 속에서 우리를 보호하기도 하고 때로는 실제적이라고 믿고 그 속으로 도피하면서 자라왔다. 환상이라는 단어는 기이한 것, 모호한 것 그리고 때로는 동화적인 것까지도 포함한다. 무엇인가 현실의 질서에 반하여 현실의 균열된 틈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의 이성이 이를 맞닥뜨렸을 때 두려움이 생기게 하는 것이 환상이다. 환상과 현실의 대립은 항상 있어왔고, 그래서 필연적으로 환상은 현실을 의식하면서 존재한다.
우리는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하여, 가상현실의 세계에서 이를 실현시키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주체에 지각되는 감각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관념론과 닮아 있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작가들은 환상과 현실을 함께 다루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현실에 대한 감각이 모호해지도록 만들고 있다. 이들은 우리가 직접 경험의 장으로 마주치는 공간에 대해 조금은 낭만적인 상상력에 어느 한 구석을 기대고 있는 이미지들을 추구한다. 아날로그적인 온기가 남아 있는 상상으로 또 다른 현실 인식의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공간들을 만드는 것이다.
이지현이 다루는 것은 자신이 주거하는 사적인 공간, 현실의 바깥을 향해 열린 창문과 거울, 기괴하거나 과도한 장식이 있는 공간의 부분적 이미지다. 많은 여백을 포함하는 조각난 캔버스, 이미지와 공간의 층위를 드러내는 거울 그리고 현실의 이미지가 서로 다른 스케일로 재현된 화면들은 관객 앞에서 또 다른 혼란스러운 공간을 만들어 낸다.
이명진 역시 2차원과 3차원의 구분이 모호한 속임수 같은 현실공간의 이미지들 사이에 있는 자신의 분신들을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나-Alter ego 또는 도플갱어로 읽을 수 있는 작가의 분신은 여러 파편화된 공간들을 떠돌면서 과거와 현재의 화해를 주선하고 있다.
정상현은 부분적으로 열린 작은 세트를 이용하여 현실 세계와 환상 세계를 동시적으로 보여준다. 작은 세트의 틈을 통해서 우리가 보는 세계는 크게 확대된 현실 세계의 일부다. 이렇게 반복된 이미지는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다. 현실 세계는 이 틈을 향하여 진행된다. 이 두 가지 이미지는 결국에는 서로 파괴적으로 침투하고 만다. 현실과 환상 또는 안과 밖, 이원론적인 구분이 붕괴되는 순간에 선택과 해석은 관객들에게 주어진다. 이러한 공간 감각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현실적으로 공간에 접근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왜냐면 현실을 속이거나 부정하는 대신 환상과 현실을 교묘히 나열함으로써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환상적 리얼리즘은(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가상 공간이 스크린에서 순간적으로 맺혔다가 미끄러지는 이미지에 존재하는 것과 달리, 더 진실하게 세계를 표현하는 방법일 수 있다. 세계는 우리가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할 것들로 가득 차서 미로 속에서 반복되고 반사되는 속임수 가득한 무엇이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존재한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展은 이러한 세계의 모습을 환상과 현실이 혼재되어 있는 상태로 관객들에게 동시적으로 제시하여 준다. 현실과 환상의 공존에서 관객이나 독자들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환상은 관객들이 이를 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일어나는 ‘믿음과 선택의 놀이’에 그 본질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혼란과 두려움의 세계에 초청된 관객들은 필연적으로 이러한 환상과 현실의 여러 갈림길에서 선택을 종용 받는다.
일민미술관 학예팀

*본 전시의 제목은 보르헤스의 소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의 정원”(1941)이 끼친 영향과 보르헤스 자신이 환상소설의 네 가지 테마로 밝힌 주제와 관련하여 붙여졌다.

참여작가
이지현, 이명진, 정상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