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문이라는 화가는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이다. 멋대로 산다는 말이 부정적으로 들린다면 그건 아니다. 세상에 눈치 볼 것도 없고 세상이 정하는 규칙에 상관없이 자신의 법칙에 맞춰 제멋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말을 들으면 화가는 반문할 것이다. 난 멋도 없는 사람인데 무슨 소리냐고, 또 나는 내 안에서 사는 사람인데 무슨 법칙이 필요하겠느냐고. 그런 생각은 사치일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남들이 가지 못하는 길을 가고 있고, 화가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그 멋을 부럽게 바라본다는 사실이다.
화가는 매일의 일상을 기록하는 일기를 쓴다. 독백도 쓰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편지도 쓴다. 이 기록-화가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사진이나 드로잉과 함께 올려져 있다-은 아주 사소하고 또 누구도 개의치 않으며 지나갈 일들이 세심히 다루어져 있다. 처음 이 글을 대할 때는 아니,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들이 다 뭐야,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이걸 다 적어놓는 거야, 라고 생각하며 가치를 주려 하지 않다가도, 읽다 보면 가끔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래, 나도 그럴 때가 있지. 나도 그런 생각을 하거나 그런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었지, 하고 말이다. 너무 사소하고 하찮아서 그냥 스쳐가는 일들을, 읽는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끝도 없이 길게 쓰인 글로 만나면서 이것이 바로 일상이라는 걸 깨닫는다.
화가가 쓰는 글 속의 사소함만큼이나 그의 그림에도 사소함이 묻어난다. 화가는 일기를 쓰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드로잉 한다. 한때는 매일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기도 했다. 생활에서 느끼는 것, 경험하는 것들이 그려진 그의 스케치는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또 다른 기록이기도 하다. 화가는 매달 그림달력-달력에는 그 달에 피는 꽃이나 주요 사물, 또는 그 무렵 화가의 심리상태가 그려져 있다-을 만들고 자화상을 그리며 스스로를 들여다본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화가의 자화상은 한 사람의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제각각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자화상을 남기지 못하는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자신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채 알 새도 없는데 말이다.
화가의 작업은 자신과의 놀이기도 하다. 화가는 가장 자신 있는 일로 ‘혼자서 잘 논다’는 것을 꼽는다. 그는 자신의 암울함, 외로움, 두려움, 그러면서 야기되는 자폐적 증상을 자기식대로 가지고 노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그렇다고 화가가 병적일 정도의 자폐증을 가진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이 지니고 있으나 미처 깨닫지 못하는, 또는 부인하고 싶기도 한 자폐적 증상을 화가는 좀더 적극적으로 드러낼 뿐이다. 그의 놀이에 나타나는 인물은 점차 무게를 덜고 비워진다. 그리고 마침내는 얇은 종잇장처럼 축 늘어지거나 간단한 선 몇 개의 형상으로 남겨지며, 인물인지 정물인지 모를 모호한 지점에 이른다.
‘외출에서 돌아와’에는 사회인이기 때문에 피치 못하게 수행해야 하는 외출에서 돌아와, 여지없이 낙담하며 입었던 웃옷을 벽에 걸고 양말을 벗어 팽개치고는 방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은 화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붉은 색은 불안과 좌절이자 곧 구원과 치유의 색이다. ‘맑은날Ⅱ’는 이부자리에 널브러져 엎치락뒤치락하는 화가 자신의 형상이고 정신이다. 불안해 보이는 붉은 색의 인물은 제목이나 전체적 색감과 대비적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어쩌면 화가는 붉은 붓질을 통해 치유의 과정을 겪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회에서 소외됐다고 느끼는 화가는 사회와 일정한 간격을 두고자 자신에게 외출금지를 명하지만, 그는 결코 현실과 단절하거나 현실을 떠나지 못한다. 그가 집착하듯 그려내는 달력, 화면에 더러 보이곤 하는 시계, 그리고 팔에 매단 가느다란 수혈튜브는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소통의 끈이고 한 가닥의 희망이다. 의문을 갖는다. 이 그림들이 화가의 일상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것이 가장 사회적인 것이라고 믿는 화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이 바로 우리의 일상은 아닐까라고.
현대사회는 외형적으로는 풍요로움이 넘치고 다양한 관계가 형성되고 있지만, 그 안의 현대인은 끊임없이 소외감을 느끼고 좌절하며, 힘겨워한다. 일민미술관이 마련하는 외출금지전은 현대 사회적 자폐증을 남궁문이라는 화가의 회화방식을 통해 드러내는 전시이다. 그럼으로써 우리 모두가 가슴에 담고 있는 예민한 감정을 인식하여 보편화시키고, 아울러 증후로서의 미술에서 공공성을 보고자 한다.
김태령 / 일민미술관 디렉터
참여작가
남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