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동아미술제 전시기획공모_고원석/Planet A-종의 출현, 황규진/보이는 손
2009 Dong-A Art Festival_Planet A-Emergence of Species / Visible Hands
2009.09.11.(Fri) ─ 2009.10.11.(Sun)
Exhibition Hall 1,2

2009 동아미술제 전시기획공모 당선작 심사평

지난 1978년 출범한 동아미술제는 그 동안 한국현대미술발전의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2006년부터는 작가전시로부터 기획전시 중심으로 변화하는 시대적 추이에 맞춰 작가공모로부터 전시기획공모로 그 체제를 바꿔 운영해오고 있다.
운영체제가 바뀐 후 올해로 네 번째를 맞는 2009 전시기획공모 접수 내역을 보면, 총 29건 중 설치 3건과 복합 21건을 합해 사실상 복합장르가 총 24건에 달했다. 장르 해체와 주제 중심의 접근방법이 정착된 것으로 봐도 될 것 같다. 전통적인 장르 해체 현상이 두드러져 보이며, 미술 내적인 문제 이를테면 형식적인 문제에 치중하기보다는 미술과 사회와의 관계를 다루는 식의 주제들이 많은데, 이는 건강한 미술환경을 정착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해 보인다. 그 와중에서도 지나치게 뻔한 논리나 식상한 주제는 제외시켰다. 그리고 사실상 그룹전 형식의 전시에 주제만 꿰 맞춘 경우도 있었다. 전시 내용과 주제가 겉돌 뿐만 아니라, 주제마저도 급조된 인상을 줘 그 진정성이 의심받는 경우다. 그리고 이미 다른 경로를 통해서 한차례 이상 전시된 이력이 있는 기획도 있었는데,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지향한다는 본 공모전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본다. 상황과 문맥이 달라진 점을 감안하더라도 개작의 수준에 머물러 모든 면에서 그 성격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로써 2009 동아미술제 전시기획공모 심사위원회의 1차 심사 결과 당선후보작으로 황규진과 고원석의 기획안을 최초 선정한 연후에, 다시 기획안의 보완을 요청하여 이를 토대로 4차례에 걸친 격론 끝에 두 안 모두를 선정하기로 최종 확정했다.

황규진의 <보이는 손>은 경제논리에서 유래한 보이지 않는 손의 개념을 정치적이고 사회학적인 문제로까지 확대 해석한 경우로서, 특히 권력이 작동하는 메커니즘과의 연동성에 주목한다. 말하자면 자본주의가 첨예화된 시대에 권력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손, 숨은 손이 아니라 보이는 손, 드러난 손, 공공연한 손이라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해 개념이 뚜렷한 만큼이나 기획의도가 신선하지는 않다는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이를테면 자본주의의 문제점 즉 일상과 문화를 조종하는(이면 혹은 표면에서) 상품자본주의의 문제를 지적한 문제의식 자체는 의미가 있으나, 이를 풀어내는 이론적인 배경이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작가와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고심한 흔적이 엿보이지 않으며(이를테면 신작 중심의 전시를 유도하기 위한), 이는 추후 전시준비과정을 통해 보완되어야 할 사안으로 지적되었다. 이런 일부 지적에도 불구하고 전 지구적으로 자본주의 이후를 논하는 논제가 설득력을 가지고 있고, 전시에 참여하는 다국적 출신 작가들이 그 주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전시 내용이 기획의도에 걸맞게 통일성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고원석의 은 몬스터나 기계 생명체 같은 새로운 종의 출현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변화된 지구생태환경(혹은 상상 속의 행성)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에 대해 주제의식이 상식적이라거나 시의 적절하다는 견해와 함께 대체로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추후 실제 전시에서 변별성을 기할 수 있게끔 주제를 좀 더 치밀하게 풀어내야 한다는 요구와 함께 미디어아트 관련기획이 간과하기 쉬운 주제라는 상반된 평가가 있었다. 특히 월 페인팅과 사운드아트 등 다양한 경향을 아우르고 있어서 한국현대미술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전시가 되리라는 점이, 그리고 그 경향 상 작품설치 과정에서 기획자의 능력이 발휘되어야 할 여지가 많으며 이는 그대로 기획자의 기획력에 초점을 맞춘 본 프로젝트의 성격에도 부합한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고충환 / 심사위원장

보이는 손 Visible Hands 기획글

자유시장 경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지배된다. 시장 참여자들 각자가 신뢰를 바탕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아래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면 모든 참여자의 부를 확대하고 공익의 극대화까지 이룰 수 있다.
아담 스미스 <국부론>
보이지 않는 손’이 종종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손’이 종종 실제로 그곳에 없기 때문이다.
Joseph E. Stiglitz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기본적으로 정부는 금융, 안보, 시장경제 조율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와 더불어 정부뿐만 아니라 몇 개의 대기업, 대형마켓,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광고 미디어 역시 세계 경제시장에서 매우 커다란 역할을 차지하며 시장경제 및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 안에서 우리는 때때로 그들의 역할이 조율이상으로 크다고 느끼며 혹은 이것이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의 생활 속에 스며들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이러한 불가항력적인 힘들을 나는 ‘보이는 손’이라 칭하고자 한다.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이기심은 현대 시장경제에서 몇 개의 커다란 보이는 손들을 낳았고, 이 확연하게 보이는 ‘보이는 손’들은 시민의 선택의 권리를 빼앗고 시장경제를 지배함은 물론이며 우리의 생활 속까지 침투하였다. 이러한 거대한 세계 자본주의 안의 보이는 손은 문화적 가치들과 그것의 전통을 재편성 시켜 놓듯이 우리 삶의 형태를 그들이 원하는 대로 바꾸어 놓는다. 예를 들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며 반복 주입시키는 광고물, 값싼 대량의 물건들, 대형브랜드들의 만연화로 선택의 기회의 감소 등은 우리에게 그것 자체에 대한 판단을 흐려지게 하고 당연히 그것들이 우리 삶의 일부이자 때로는 전부인 것처럼 주입한다. ‘보이는 손’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제한된 선택의 자유를 갖게 된다. 동시에 ‘보이는 손’의 경제체제는 사람들에게 제한된 자유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을 통제 해왔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를 마치 잘 만들어진 놀이공원 안에서 즐거워하는 어린아이처럼 조정 불가능한 현실을 모두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이 전시 <보이는 손 (Visible Hands)> 는 현대사회에 만연한 거대 자본주의 (Capitalism), 세계화 (Globalisation), 시장경제 (Market force)에 대해 각기 다른 나라와 배경에서 경험하고 있는 7명의 작가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현대국제사회의 보이는 손에 대한 해석이다. 또한 이 전시는 우리가 그 동안 우리를 지배하는 사회시스템 (미디어, 광고, 대기업의 횡포, 대형마켓)에 불가항력적으로 반응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증거해 줄 것이며 아울러 그 너머의 진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제시해 줄 것이다.
본 전시를 통해 나는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 예술가가 사회를 대상으로 낼 수 있는 목소리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다. 단순히 예술이 심미적 아름다움의 추구, 미적 대상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사회안에서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자 한다.
각기 다른 곳에서 태어나 다른 사회적 배경과 문화를 경험하고 살아가는 7명의 작가를 통해 바라본 동일한 주제(자본주의와 그에 따른 국가의 통제와 기업, 미디어의 횡포에 무기력한 인간)를 통해 글로벌 시대에 우리가 처한 사회상과 이를 일깨우기 위한 예술가들의 움직임에 대해 느끼며 나아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며 살아온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 해 보고자 한다.
이 전시를 통하여 예술의 사회에 대한 목소리와 도전, 관객을 일깨우는 역할 또한 현시대를 살아가는 예술인들이 진지하게 생각 해 보아야 할 또 하나의 과제임을 인식하고자 한다.
황규진 / 전시기획자

Planet A_종의 출현 Emergence of Species 기획글

작가는 자연과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기록하여 실존의 제한을 연장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는 환경의 범위를 초월하여 보이지 않는 가상의 세계를 구현하는 창조자이기도 하다. 후자의 관점에서 볼 때, 예술은 보편적인 상식과 이론의 틀을 넘어 새로운 규칙을 획득한 세계를 제시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인간으로서의 물리적 한계를 초월하여 독창적인 특질과 법칙이 적용되는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은 예술이 태동하던 시기이래 창작 행위의 가장 기본적인 동인 중 하나였다. 작가는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동원하여 시대의 제약을 초월하였고, 신비의 세계를 조물하고 창조하였으며, 그 형태를 현현시켰다. 그들이 제시한 신비로운 세계는 예술사의 본질적인 흐름 중 하나였다.
예술가들의 창조물에서 보여지는 시각적 형식은 다양한 분야의 원류로 기능하였다. 그들이 묘사한 보이지 않는 세계, 새로운 세상의 신비로운 이미지는 오늘날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매체 이미지의 시각적 배경이 되기도 하였고, 새로운 기술과 발명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였다. 이들이 재현해 놓은 새로운 세상의 이미지야말로 오늘날 고도로 발달한 인터페이스(컴퓨터, 3D 안경, 데이터 전송의복 등의 매체, 혹은 아예 두뇌 속에 이식되어 신체의 일부분으로서 작동되는 칩)에 결합되는 영혼과도 같은 것들이고, 이 결합을 통해 실재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도 있는 가상 현실이 완성되는 것이다.
본 전시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고 지배를 받는 현실 세계의 법칙을 초월하여, 새로운 구조와 고유한 형식을 갖춘 가상의 세계를 제시하는 작품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전시에서 주목하는 것은 정교한 기술매체로 재현된 감각적 리얼리티가 아니라, 그러한 세상을 창조하게 만든, 경계 없는 상상력 그 자체이다. 새로운 매체를 사용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기술적 환경의 한계를 초월하여, 고전적이고 단순한 형식에 펼쳐 놓는 광대한 예술적 상상력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은 총 여섯 명의 작가들에 의해 구현된 여섯 종류의 상상의 세계를 선보이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작가들은 고유한 상상력과 미학적 관점에 의해 구성된 새로운 세계를 창출하게 된다. 그들이 구성한 세계는 스스로 독립된 구조와 체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일종의 행성(Planet)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 행성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에 특별한 이름을 부여하지는 못했지만, 어딘가에서 익명(Anonymous)으로 존재하는 세계인 것이다. 전시의 제목은 어딘가에 여하한 명칭으로 존재하는 어떤 장소를 지칭하는 것이다.
본 전시에 출품되는 작품들은 대부분 본 전시를 위해 새롭게 창작되거나 일부는 작가와 기획자간의 논의를 거쳐 기존 작품을 새로운 형식으로 재배치한 것들이다. 작가들은 본 전시가 재현되는 장소의 특성과 위치 및 환경을 감안하여 작품을 출품하였는데, 이러한 태도는 가상의 세계가 가진 ‘장소성’이 현실 세계와 전적으로 유리된 것이 아니라 현실에 밀접한 기반을 두고 있는 것임을 은유 한다.
이승애는 정교한 생장의 메커니즘을 갖는 몬스터들을 창작한다. 그들은 대개 한 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숙명적으로 감응해야 하는 실존적 환경들이 요인이 되어 탄생한다. 공고한 세상의 거대 구조 앞에서 나약한 개인일수밖에 없는 존재론적 절망은 끝없는 체념과 좌절을 일으키고 여기에 분노와 저항의 격한 감정들이 개입되면서 몬스터들의 생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몬스터들이 생식하고 있는 세계는 작가가 탄생시킨, 보이지 않는 세계이기도 한데, 그 준엄한 법칙은 현실의 그것보다 더 큰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그는 ‘마스크를 쓰고 결전에 임하는’ 몬스터들을 창작했다.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동안 수많은 저항과 투쟁이 격발하며 승리와 패배가 교차했던 미술관 앞 그 거리에서, 산발적으로 달려들어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불특정 다수의 적들을 대상으로 전투를 벌이는 몬스터들과, 그들이 전투를 위해 착용하는 마스크가 함께 전시장에 등장하게 된다.
이해민선은 기발한 재료와 독특한 방법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재구성한다. 그는 임의적인 공간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을 분해, 재배치하여 새로운 돌연변이를 발표해왔다. 그의 작품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 생물체가 구성되는 원리, 즉 현존하는 공간의 재구성의 원리이다. 작가의 기발한 재구성은 건축 도면이 갖는 속성과 적절히 결합하며 원래 그렇게 존재했던 것과 같은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아파트와 같은 전형적인 도시의 정주공간의 건축 드로잉을 변형시켜 탄생시킨 변이 생물체들을 선보인다. 그가 드로잉과 회화를 통해 재구성하는 공간은 오늘날 대부분의 시민들이 거주하는 도시의 공간들, 즉 고층빌딩이나 아파트와 같은 곳이다. 그는 도시의 지형도를 획일적으로 바꾸어놓고 있는 동시대의 풍경 요소들을 변이시켜 새로운 생물체들을 탄생시킨다. 이승애와 이해민선은 가상 세계에 출현하는 새로운 종을 가장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작가들이다
김병호의 작품은 모든 종류의 판타지들이 불협화음을 내며 어색하게 묶여 있는 모종의 집단을 묘사한다. 그 판타지들의 본질은 집단을 이루고 있는 개별 단위들 각자의 욕망이다. 그는 그 욕망의 모체들이 집적되어 있는 세계를 조각과 설치의 형식과 함께 사운드를 통해 표현한다. 작가가 직접 설계하고 제어하는 회로를 기반으로 한 이 사운드는 스스로 발산하고 수용하며 증식하고 소멸한다. 수십 개의 알루미늄 관 혹은 과장된 형태로 공격적인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파이프 형식의 오브제 등은 사운드와 함께 서로 결합되고 증식되는 욕망의 판타지를 가시화한다. 마치 욕망이라는 것이 자가 증식하고 전이되는 것처럼,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스스로 생성, 소멸하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이번 전시에서 김병호는 알루미늄 파이프 오브제를 활용한 작품을 새로 창작하여 설치한다. 2미터가 넘는 지름의 파이프 다발의 중심 부분에 소리를 만들고 전기적 제어를 담당하는 회로가 있고, 그 콘트롤 파트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연결된 200여 개의 가느다란 관들이 뿜어져 나온다. 콘트롤 파트에서 만들어진 소리는 200여 개의 관에 삽입된 스피커를 통해 조용하게 흘러 나온다. 관객은 원거리에서는 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지만, 작품에 근접했을 때 조용하면서도 복잡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임선이는 현실 세계의 풍경들로부터 작품의 모티브를 얻어 왔다. 그는 익숙한 풍경 속에서 평범한 사물을 의식적으로 선택하여 그것을 변형하고 반복적으로 재생산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생기는 저마다 새로운 상황들을 작품의 일부로 끌어 들임으로써 작품이 은유하는 세상의 분위기를 암시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자연과 문명이 복잡하게 공존하는 경계 면에서 심리적인 정리와 결론을 유보하고, 그 내부에 독특한 세상을 창조하는데, 작품의 제목들이 그러한 내용을 적절히 내포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임선이는 ‘부조리한 풍경(Trifocal Landscape)’의 새로운 구성을 선보인다. 주변에 실재하는 풍경을 기호화시켜 평면에 새롭게 표현해 놓은 지형도의 등고선을 촬영한 그의 작품은 물리적 형식의 변형에 이미지적 형식의 변형을 한번 더 가하는 것으로, 현실적인 차원에서의 감각은 더욱 과장되거나 증폭된다.
임자혁은 일상에서의 체험이나 고통을 수반한 자전적 기억, 표현하기에는 너무 사소한 감상 등 삶의 다양한 편린들에서 얻어진 이미지들을 자동기술법적 방법으로 묘사한다. 응집과 확산을 반복하며 공간을 부유하는 현란한 이미지들은 의식의 비정형적 흐름에 따라 존재한다. 비논리와 순환적 시간의 다양한 레이어를 자유롭게 유영하며 펼쳐놓는 이미지는 논리와 규범보다 모순과 부조리가 더 유효한 현실 세계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드로잉들을 중첩시켜 새로운 형식의 복합 드로잉을 구성하는 그의 작업은 동시대 시각 문화의 부유하는 이미지들이 반영되고 변형되어 구성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게 된다. ‘계획을 미리 세우지 않음’을 주요 원리로 하는 그는, 이번 전시의 특수한 전시장 환경을 기반으로 특수 제작된 규격의 캔버스에 새로운 회화 작품을 선보이게 된다.
김기철은 일관되게 사운드의 시각적 재현에 집중해 온 작가이다. ‘소리는 낮은 파장이고 빛은 높은 파장이다. 소리가 빛처럼 직접적인 가시성은 없지만 치환하면 직접적으로 소리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품어온 김기철은 어떤 시각적 재현행위를 데이터 값으로 치환하여 그게 조응하는 소리를 만들어 내거나, 어떤 상황에서 존재했음직한 소리를 당시의 상황으로부터 분리하여 나름대로의 유기성을 갖는 그 무엇으로 독립시키는 작업을 주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김기철은 사운드의 발생과 청취의 기계적 메커니즘을 초월하여 생명력을 부여 받아 살아 움직이는 듯한 소리를 발표하게 될 것이다. 전시실 한쪽에 마치 음향실과 같은 분위기의 방에서 재현되는 그의 사운드는 가상의 방향성을 부여함으로써 청취에 집중하는 관객들을 순식간에 위치이동 시키게 된다. 청각과 상상력의 메커니즘이 관객에게 가상의 세계에 와 있는듯한 경험을 부여하는 것이다.
우리의 눈 앞에 존재하는 세상은 반드시 어떤 절대적인 필연성을 가진 실재가 아닐 수도 있다. 넬슨 굿먼N. Goodman은 세계는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버전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며, 우리가 세계를 기술하거나 묘사하거나 지각하는 순간 세계는 체계화되고 버전화된다는 버전 의존적Version Dependent 세계를 역설했다. 그의 주장처럼 예술가는 각자의 특별한 서식지에서 존재하며, 자신이 거주하는 서식지의 특징을 재현하는 사람들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예술가들의 재현은 문자적인 기술Description이 아니라 시각적이고 은유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 전시가 갖는 중요한 의미는 예술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데 사용되는 어떤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세상을 창조하는 주체이자, 그 신비한 비전을 제시하는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존재임을 환기하는 것에 있다. 예술이 최초부터 지니고 있던 예술 고유의 정신과 모방할 수 없는 독창성은 이 전시에 나타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이 전시를 통해 경계 없는 상상력과 고전적인 형식미에 담긴 상상의 세계의 모습을 관객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고원석 / 전시기획자, 공간화랑 큐레이터

참여작가
Emilio Chapela Perez(멕시코), 이완(한국), Susie Green(영국), 진기종(한국), 김기철, 김병호, 이승애, 이해민선, 임선이, 임자혁

보이는 손 Visible Hands / 기획_황규진
Planet A_종의 출현 Emergence of Species / 기획_고원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