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문제에 답하려면 큰군함새와 인터뷰를 해야겠지만, 내가 알기로는 아직 아무도 그러지 못했어요. 그러나 목숨을 바쳐가며 그 새들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암컷들은 사실 제일 좋은 둥지터를 가리키는 풍선을 선택한답니다. 그 견해는 생존의 견지에서 봐도 일리가 있네요. 그 견해에 따른다면, 우리는 다시 푸른발부비새의 구애춤이라는 참으로 불가사의한 문제로 올라가게 됩니다. 구 춤은 부비새의 생존에 필요한 집 짓기나 물고기 사냥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니까요. 그렇다면 무엇과 관계가 있을까요? 용감하게 그냥 종교라고 할까요? 그럴 용기가 없다면 그냥 ‘예술’이라고 불러도 좋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을 말해보세요.”
_커트 보네거트, <갈라파고스>, 박웅희 옮김, 아이필드, 2001, p.94-95
동시대 아티스트의 작업은 우리가 흔히 ‘미술’이라는 단어에 기대하는 미적 유희이기 보다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포함한 창의적 기술에 대한 논의의 시발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아름답던 혹은 그렇지 못하던 간에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의 중심에는 ‘생존의 문제’가 자리한다. 더하여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예술은 생존 후의 잉여활동으로서의 가치가 아니라 생존의 기술을 강화시켜주는 기술이다. 진화심리학에서 인간심리의 보편성과 초기예술을 발생을 이야기할 때 기하학적 문양을 통해 위험한 자연적 공간에서 질서를 부여하고, 번식과 구애를 위해 장식과 치장이 생겨난 것, 사냥을 위한 집단의 제의를 위한 동굴회화를 이야기 한다. 이와 같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가지고 있는 보편적 노력과 그에 따른 부산물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지금 광화문의 밖에선 ‘생존‘에 관하여 각자에게 ‘절대적이라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끊임없는 발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민미술관에서는 지금 ‘생존의 문제’와 관련하여 작가(예술가)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행하고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의 기회를 마련해보고자 한다.
윌킴, 강소영릴릴, 송호준, 안두진, 정소영 5명의 작가들은 제각각 생존을 위한 창의적 기술을 제시한다. 가장 강한 힘을 가지는 것, 이와 관련한 기계를 발명하는 것, 기록을 남기는 것, 힘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 공통된 경험을 위해 거대한 숭고함의 기점을 만드는 것에 관한 이야기는 회화, 영상, 설치 등 각각의 다양한 시각적 결과물로 보여진다. 물론 작품들은 아름다운(우세한) 모양새를 뽐내며 전시 될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술계’라는 집단에서의 생존에서 고안된 기술이라 판단할 수 있겠지만 공유하고자 하는 것은 보다 넓은 현실에서의 생존에 관한 이야기이다.
전시에서는 <갈라파고스> 소설의 문구가 작품과 함께 배치된다. <커트 보네거트, “갈라파고스”>, 1985>는 진화론의 배경이 되는 에콰도르의 섬 갈라파고스를 여행하게 된 사람들의 운석에 의해 지구의 인간이 멸종된 이후 백만 년에 걸쳐 물고기로 진화하여 살아남게 되는 과정을 묘사한 sf소설이다. 예술을 통한 기술은 식량, 주거, 환경적 위험의 극복과 같은 일차적 행위가 아니라 일차적 행위를 뒷받침 하고 그 결과인 생존을 ‘강화’시켜주는 기술이다. 따라서 소설의 스토리에 나오는 생존을 위한 일차적 행위들과 작가의 작품에서 다루어지는 기술의 연결이 예술과 생존의 관계의 논의에 대하여 흥미로운 매듭의 형태를 보여줄 것이다.
인류는 <갈라파고스>소설에서와 같은 생물학적 변이 없이 10만년 전 인류의 형태인 호미니드(hominid)가 출현 한 이후 같은 물리적 구조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인간의 정서와 심리적 구조에 따른 개별적 기술은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해왔다. 전시에서는 이것들이 동시대의 예술적 형태로 어떻게 나타났는가의 예시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모아 전시하고 함께 논의 함으로써 생존의 모색을 위한 또 하나의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이 지닌 생존의 기술은 개개인의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하면서도 인류라는 전체의 보편성을 공유하고 있다. 전시에서 작가들은 작품에서 시각적 설명을 위해 어느 정도의 격리된 상황이나 그에 따른 시각적 연출은 하지만 그 안에서 인간의 극단적 감정에 집중하거나 또는 격리된 상황에서 생명의 유지를 위한 논리적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각각의 작품들과 그 집합은 창의적인 각자의 방법을 고안해 내기 위한 자극을 위한 장치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작품은 개별로서 혹은 다른 작가의 것과 더해져 공공의 생존에 도움이 될 만한 새로운 기술을 제안할 것이며, 이러한 시각적 자극을 통해 관람객들로 하여금 개개인의 전략을 공유함으로써 외부에서 쟁취하지 않고도 각자의 내부에서 생존기술에의 진화 일보가 생겨나기를 기대한다. /양유진
참여작가
강소영릴릴, 송호준, 안두진, 윌킴, 정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