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DEOCRACY : 영상에 의한 통치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 동시에 그 움직임이 한 선을 만들어내는 것, 어쩌면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의 업을 동시에 지속하고 있는 것이 동시대에서 문화의 한 지점을 감당해내는 예술가의 힘을 만들어 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의 작업실은 사진, 드로잉, 영상, 소리 등 다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감각적 물질을 생산해내는 화수분과 같았습니다. 그 많은 작품이 국내 대중에게는 오랜 기간 드러나지 않고 있었고, 그 것들은 직접 대하지 않고는 조금도 다가설 수 없는 막막한 거대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일민미술관은 우리의 인식 밖의 세계에 있는 듯 느껴지지만 실은 인식의 한 가운데에 실존하고자 하는 치열함이 가득한 작가 육근병의 예술세계에 조금 더 다가가는 기회를 갖고자 이번 전시를 마련하였습니다.
전시는 < survival is history >, < transport >, < messanger’s message >, < apocalypse > 4개의 audiovisual installation 작품과 이에 다가가기 위한 키워드들을 지닌 드로잉, 영상, 사진 등의 아카이브 2가지로 구성됩니다.
작가는 인간과 주변을 구성하는 기본적 원소들로 시각적 결과물들을 만들어냅니다. 일차적으로 보여지는 표면의 영상과 소리에서 조금 더 작품의 깊이에 다가서면 그가 말하는 그 원소들의 정수인 ankh(생명)이 있고 더 나아가 숨의 축적의 결과인 역사가 담겨있습니다. 또한 구조물이 되는 거대한 구형, 직선의 오브제는 직관적 거대함으로 보는 이들을 압도합니다.
한편 전시 되는 작품 중 를 통해서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아온 개인의 사사로운 심정을 조금은 엿볼 수 있습니다. 2개의 커다란 크레이트 안에는 자신을 투영한 풍경의 영상과 지난 시간 작업활동의 기록이 각각 담겨 있습니다. 작가는 1992년 카셀도큐멘타에 참여한 후 20년간 작업실에서 작품을 완성해 커다란 나무 박스에 포장하여 보내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해외 곳곳의 전시장소에서 작가 본인 그 자체이기도 한 작품과 다시 만납니다. 그것은 전시라는 일련의 퍼포먼스를 위해 자아의 일부와 분리되는 과정이었고, 이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결과물인 오브제를 자신의 일부를 가져간 타아로서 바라봅니다. 예술가가 자아와 타아 2개의 분리된 앙크(ankh)•생명의 실례로서 보여지는 것은 비단 시각문화에 대한 예민함 없이 살아가는 대중에게도 예술이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알아챔을 이끌어 냅니다. 그 외 전시되는 작품들이 담고 있는 깊은 층위들은 글로써 보다는 작품을 마주하고 그 힘에 제압되는 체험을 통해 보다 더 핵심에 다가설 수 있을 것입니다.
일민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그간 조용한 수면 아래에 숨어있던 육근병의 파토스(patos)를 전달, 작가에 대한, 그의 작품에 대한 혹은 관람자 스스로에 대한 메시지가 새롭게 자생하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새롭게 자생한 것이 쌓여 지금 이후에 문화를 생산해 낼 수 있는 또 다른 힘의 역사가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김태령 / 일민미술관 관장 겸 기획실장
참여작가
육근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