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박물관을 일민미술관으로 옮겨오다
일민미술관(관장: 김태령)은 6월 26일부터 9월 21일까지 인문학박물관 아카이브 전시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전을 개최한다. 2008년 중앙 중∙고등학교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개관한 인문학박물관은 방대한 양의 책과 문서 자료를 바탕으로 20세기 한국 사회의 변화상을 추적하면서 그 정신사적 흐름을 조망하기 위해 세워졌지만, 아쉽게도 2013년 고려대학교박물관으로 이관이 결정되었다. 일민미술관은 시각문화 연구자 박해천, 윤원화와 미술 기획자 현시원을 초청하여, 이동 과정에 놓인 소장품들을 미술관의 맥락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이고자 한다. 기획자들은 50,000여 점에 달하는 인문학박물관의 책과 관련 자료 중 500여 점을 선별하여, 전시, 단행본, 퍼블릭 프로그램으로 재구성한다. 전시는 이수성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인문학박물관 소장품을 사운드, 영상, 설치물, 읽기 자료 등 새로운 형태의 전시물로 재생성한다. 이는 ‘관객’과 ‘독자’라는 위치, ‘보다’와 ‘읽다’라는 행위를 교차시키면서, 물체인 동시에 매체라는 책의 이중적 성격을 가시화하려는 시도이다. 그리고 전시 개막에 맞추어 일민미술관과 워크룸 프레스가 단행본 『휴먼 스케일』을 공동 발행한다. 단순한 전시 도록이 아니라 전시의 해설서이자 독립된 단행본으로서, 『휴먼 스케일』은 기획자들과 이들이 초청한 외부 필자들의 글을 통해 전시물을 독해하는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전시와 단행본이 다루는 여러 소주제들은 퍼블릭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주제별 강연과 토크로 더욱 심도있게 확장될 예정이다.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전은 이렇게 다양한 접근법들을 동원하여, 박물관의 유물로 남은 책들을 지금 여기의 시공간에 유의미하게 되살리고자 한다. 이는 책을 읽고 쓰는 인간의 행위를 중심으로 우리의 어제와 오늘을 함께 되짚어보려는 기회가 될 것이다.
책의 시대: 책 속에 남겨진 과거의 꿈과 현실을 시청각적 전시로 재구성
20세기는 책이 귀중한 것, 강력한 것, 그래서 때로 위험한 것으로 여겨지던 시대, 책을 쓰고 읽으며 우리가 앞으로 되어야 할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모색하고 전파하려 애쓰던 시대다. 하지만 20세기는 책이 대중적 오락거리로서 당대의 실상과 환상을 적나라하게 반영하던 시대이기도 하다.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전은 인터넷이 등장하기 이전의 시대, 라디오와 영화, 텔레비전이 있었지만 여전히 책이 가장 지배적이고 대중적인 매체였던 지난 시간을 오늘의 시점에서 재조명한다. 여기 모인 책들은 희귀한 책이 아니라 버려지고 잊혀진 책들이며, 한때는 대중적이었던 책들이다. 일본어로 적힌 1930년대생의 국민학교 교과서와 학습장, 영어와 한국어가 뒤섞인 1950년대의 농민 교육서와 여성 잡지, 사진과 텍스트가 광고와 기사를 넘나들며 교차하는 1980년대의 교양잡지, 대학 교육을 받은 1960년대생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었을 법한 책들. 이런 책들은 우리가 어떤 인간이 되고 싶어했으며 어떤 사회를 희망했는지, 역으로 어떤 사회 속에서 어떤 인간으로 훈육되었는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희망과 훈육이 어떤 물질적, 매체적 조건 속에서 실현되었는지 증언한다. 널리 읽히기 위해 인쇄되었으나 단 수십 년 만에 해독하기도 어려워진 낡은 책들은 현재와 절연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우리와 이어져 있다.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전은 이렇게 종잡을 수 없이 남겨진 인쇄물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처한 위치를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아볼 것을 권한다.
섹션 1: 모더니티의 평행 우주
근대화의 과정은 시차와 거리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불균질한 집단적 경험으로 표출되곤 한다. 본 섹션은 해방 전후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개별 행위자들이 경험한 모더니티의 양상에 주목하기 위해 가상의 주인공 두 명을 내세운다. 그 주인공은 193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서울 토박이와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난 지방 농촌 출신이며, 주요 전시 대상은 이 두 주인공이 유년기부터 특정 연령대까지 인쇄물의 형태로 읽거나 보았을 법한 이미지와 텍스트들이다. 이와 함께 그들과는 다른 세대와 계층에 속한 15명의 인생 역정이 오디오북과 같은 형식으로 전시되며, 모더니티에 대한 반응을 담은 당대의 텍스트들도 복사물의 형태로 배포된다.
섹션 2: 인간의 생산
인적 자원을 양성하려는 국가적 기획으로서든 인간답게 살기 위한 상승의 사적 수단으로서든, 교육은 언제나 미래를 기획하는 행위다. 그런데 근현대사의 불연속 속에서 이 미래들은 끊임없이 또 다른 미래들로 교체되며, 그 결과 교육이 지향하는 인간과 사회의 형상 또한 시시때때로 뒤바뀐다. 본 섹션은 책이 교육의 매개체로서 특권적 지위를 누렸던 1980년대 이전에 초점을 맞추어, 학생과 군인, 샐러리맨과 지식인, 농민과 공민, 시민과 국민 등 당대에 보급된 ‘인간’의 청사진과 그에 전제된 ‘사회’의 구상들을 되살린다. 일제 시대의 농민독본에서 군부 독재기의 국민교육헌장독본에 이르는 인간 생산의 기획들은 현재가 되지 못한 당대의 미래들을 보여준다.
섹션 3: 이상한 거울들
과거의 물건들은 언어의 체계로는 쉽사리 잡히지 않는 정체 모를 실마리들을 간직하고 있다. 본 섹션은 이처럼 이질적인 파편들을 다양한 사운드와 영상, 이미지의 모음으로 재구성한다. 일본 아사히 신문사의 출판물에 담긴 식민지 말기 조선의 이미지, 1950년대 한일 미군기지의 주변 풍경, 현대화된 여성의 다양한 모습, 잡지의 곁다리 그림 등을 무대 위로 불러내고, 근대화와 더불어 불려왔던 노래들과 함께 목사로 전향한 무장 공비의 목소리, 1950년대 말 프랑스 파리 유학생의 수기에도 귀를 기울인다. 하나의 덩어리로 묶이기 어려운 이 자료들은 마치 기이한 형태의 곡면 거울처럼 제각각의 반사율로 시대 상황을 수렴시키거나 발산하고 있다.
단행본 ‹휴먼 스케일› 동시 출간: 20세기 한국의 특수한 질문을 찾아가는 지적 여정의 재구성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전은 20세기 한국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책들과 그 책을 읽고 썼던 무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더 심층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단행본 ‹휴먼 스케일›을 전시 개막에 맞추어 발간한다. 세 명의 기획자들을 비롯하여 ‹논객시대›의 저자 노정태, 문학평론가 복도훈, 한겨레신문사 기자 고나무 등이 필자로 참여해서 전시물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제공한다. 그 외에도 관객들이 전시와 책의 내용에 더 쉽게 접근하고 전시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할 수 있도록, 도슨트 프로그램과 다양한 토크 및 강연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주최
일민미술관, 신문박물관
전시물
인문학박물관 소장품을 재구성한 인쇄물, 유물, 액자, 사운드 등 500여 점
장소
일민미술관 1, 2층
초청 기획
박해천, 윤원화, 현시원
From June 26th to September 21st, Ilmin Museum of Art will host the exhibition, Humanities Museum Archive’s Human Scale. The Humanities Museum, open in 2008 to commemorate the 100th anniversary of Choongang middle school and high school, was established to trace the change of Korean history in the 20th century based on a vast archive of books and documents. Unfortunately, the museum was transferred to Korea University Museum in 2013. Ilmin Museum invited visual culture researchers Haecheon Park and Wonhwa Yoon and art director Seewon Hyun to feature the collections that are in the process of transfer in the context of the museum. About 500 books and related materials of the Humanities Museum were chosen from 50,000 documents to be reconstituted as an exhibition, publication, and public programs. Through the collaboration with artist Soo Sung Lee, the exhibition recreates the collection of the Humanities Museum into a new form of display such as sound, video, installation, and reading material. This is an attempt to visualize the dual character of the book as medium and object while intersecting the position of the ‘audience’ and the ‘reader’, and the act of ‘seeing’ and ‘reading’. In addition, Ilmin Museum and Workroom Press will co-publish Human Scale. Not as a mere exhibition catalog but as a guidebook and an independent publication, Human Scale informs an alternative viewpoint of experiencing the show through the writings of curators and contributors. Various sub-themes covered by the exhibition and publication will further expand through numerous lectures and public programs. Read the Next Sentence uses diverse approaches to make the remains of the museum significant again in this time and space. The exhibition will be an opportunity to back into our past and present through the human act of reading and writing.
Venue
Gallery 1, 2
Organized by
Ilmin Museum of Art
Curated by
Haecheon Park, Seewon Hyun, Wonhwa Yoon
Supported by
Arts Council Korea,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