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던지는 세 개의 주사위> 길드다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연계 리서치

팀 <길드다>는 인문학을 통해 삶의 자립을 꿈꾸는 청년들의 모임입니다. 오늘도 다양한 인문학적 주제를 아우르며 강좌, 세미나, 전시와 네트워킹 활동을 벌여나가고 있습니다. 더 많은 길드다의 활동을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사이트를 참고 바랍니다. (https://guild.tistory.com/)

글쓴이 차명식은 팀 길드다 소속의 필진입니다. 대학에서는 인류학을 전공했지만 그 외에도 관심을 갖고 공부한 여러 주제들로 글을 쓰고 다양한 이들과 나누어왔습니다.

주사위라는 물건으로부터

앞날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나 존재했다. 그 호기심에 힘입어 미래와 운명을 점치기 위한 기술과 도구들이 수없이 만들어졌고 그 중 몇몇은 수백 수천 년의 세월을 지나 오늘날까지도 우리 일상에 남아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주사위다.

주사위의 역사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기원전 1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주로 고대 이집트의 유적이나 고대 인도의 고문헌에서 그 흔적이 발견되는데, 최초에는 양이나 소의 발목뼈를 깎아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시간이 지나며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면서 상아, 나무, 돌, 금속 등 재질이 다양해졌고 그 형태에 있어서도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팔면체 등으로 세분화되었다. 한국에서는 신라시대 유적인 안압지에서 발굴된 정십사면체 주사위 ‘주령구’가 특히 유명한데, 열네 개의 면 각각에 서로 다른 벌칙들이 쓰여 있어 주로 술자리의 분위기를 띄우는데 사용되었다고 추측된다.

이 외에도 수많은 주사위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상 속 유희의 도구로 쓰이며 사용자들의 운을 시험했다. 하지만 때때로 주사위는 단순한 놀이도구를 넘어 인간과 삶, 운명과 세계에 대한 메타포로서 사람들을 고뇌하게 만들기도 했다. 오늘 여기서는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세 개의 주사위에 대한 이야기들을 통해 인간이 운명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어떤 태도들에 대하여 살펴볼 것이다.

 

첫 번째 굴림, 황제의 주사위

첫 번째 주사위를 살피기 위해서는 저 멀리 유럽, 지중해의 이탈리아 반도로 가야한다. 바야흐로 기원전 49년, 이탈리아 반도의 북부를 흐르는 루비콘 강 앞에서 한 장군이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의 이름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 공화국의 장군으로서 갈리아(오늘날의 프랑스) 지방을 정복한 자였으며 이른바 ‘삼두정치’의 일원으로 약 10년에 걸쳐 로마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온 세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갈리아 지방에서의 자신의 임기를 끝내고 수도 로마로 돌아오던 중이었는데, 그때 로마에서는 그의 라이벌이었던 또 다른 장군 ‘폼페이우스’가 군권을 차지한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때 동지였던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이가 벌어져 권력을 다투고 있었으며 당시 폼페이우스는 로마 의회의 지지를 얻어 카이사르를 강하게 압박하던 중이었다.

전통적으로 로마의 장군들은 임기가 끝나고 돌아올 때 루비콘 강 앞에서 자신의 군대를 해산하고 홀로 로마로 돌아와야 했으며 카이사르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즉, 이제 카이사르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통에 따라 군대를 해산하고 혼자서 폼페이우스가 기다리는 범의 아가리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군대 해산을 거부하고 조국을 향해 반란을 일으킬 것인가. 그는 고민 끝에 결국 반란을 택했고, 단 한 마디를 남기고 군대와 함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군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한 번 던져진 주사위는 돌이킬 수 없다. 운명에 맡기고 결단했다면 마땅히 그 의지에 몸을 맡겨야 한다. 카이사르의 이러한 선택은 삶과 세계에 대한 일종의 주의주의主意主義적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주의주의란 지성을 포함한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오직 ‘의지’가 가장 우선하며, ‘의지’야말로 세계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의 근원이 된다고 보는 사상이다. 사실 이 말 자체는 카이사르가 처음 한 말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 희극에서 나왔던 대사를 카이사르가 인용한 것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카이사르라는 인간의 사고와 삶을 너무나 잘 드러내고 있는 말이기에 오늘날까지도 그를 상징하는 대사로 통한다. 실제로 그가 남긴 또 다른 유명한 말, “위대한 결정은 숙고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실행되는 것이다.”에서도 그의 주의주의적 태도는 강하게 드러난다. 어떤 일을 놓고 끊임없이 고민하며 망설이거나 이미 일어난 일을 놓고 계속해서 후회하며 뒤를 돌아보기보다 스스로의 의지에 몸을 맡겨 결단하고 그것을 운명으로 믿으며 나아가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삶과 운명에 대한 카이사르의 방식이었다.

그 후 카이사르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그는 결국 폼페이우스를 무찌르고 거대한 로마 공화국 전체를 손에 넣었으며 사실상 황제나 다름없는 자리에 올라 로마를 통치하다가 몇 년 후 반대파에 의해 암살당했다. 하지만 결국 그의 후계자가 그를 이어받아 로마 최초의 황제가 되었으며, 카이사르는 새로운 로마 제국의 시조로 떠받들어지면서 사실상 서양의 ‘황제’ 이미지의 원형으로 여겨진다. 때문에 그가 던진 주사위를 우리는 ‘황제의 주사위’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굴림, 철학자의 주사위

인간은 주사위와 같아, 스스로를 인생 속으로 던진다.” 1905년에 태어나 1980년에 죽은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정확히 어느 시점에 이 말을 남겼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충분히 이와 같은 말을 남겼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른바 ‘실존주의’ 철학의 기수로서, ‘존재’가 ‘본질’에 우선한다고 주장했고, 그로 인해 이후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까지 서구 세계 전역을 휩쓴 학생 운동의 사상적 배후 중 한 명으로 지목되었다. 그가 믿은 것은 인간의 가능성이었으며, 인간이 세계를 만들고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지녔다는 것이었다.

‘존재’가 ‘본질’에 우선한다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일까? 얼핏 듣기에는 난해하게 들리지만 사실 이는 매우 간단하게 설명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우선 ‘본질’은 어떤 사물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성질이자 쓰임새, 어쩌면 타고난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러한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저마다의 답을 내왔던 것이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인간의 경우 그런 ‘본질’을 갖기 이전에 먼저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즉 인간에게는 타고난 운명도, 처음부터 정해진 성질이나 쓰임새도 없으며 그런 것 없이 우선 존재한다는 뜻이다.

사실 사르트르가 처음 이와 같은 말을 했을 때 그는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다. 그 비판의 요지는 그의 실존주의가 인간을 삶의 방향성이 없는 허무한 존재로 깎아내린다는 것이었다. 사실 애초에 실존주의라는 말 자체가 별다른 고민 없이 지금 이 순간 존재한다는 것을 즐기며 방탕한 삶을 사는 그 시대의 젊은이들을 비판하기 위해 주로 쓰인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비판에 대해 사르트르는 자신이 말하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며 분노하며 반박했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분명 인간에게 미리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실천’을 통해 그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 자신의 삶과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 결과 만들어진 자신의 삶과 자신의 세계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질 의무가 있다. 물론 인간은 전능한 신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설령 어떤 일을 실천한다 하더라도 항상 그 자신의 뜻대로 완벽하게 이루어낼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인간은 가능성을 가지고 시도할 수 있다. 무슨 숫자가 나올지는 미리 정확히 알지 못해도 주사위를 던지겠다고 선택하고 실천할 수 있으며, 그 결과에 따라 삶과 세계는 반드시 그 모습을 바꾼다.

이러한 사르트르의 사상은 1900년대 중반의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신들을 주사위로서 던지기 위해, 스스로의 행동으로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거리로 몰려나왔고 그 결과 60년대 후반에는 서구 세계 전체가 혁명을 꿈꾸는 학생들의 물결에 휩쓸렸다. 이처럼 자신의 삶과 세계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가기 위해 설령 실패할지라도 스스로 선택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것. 그것이 사르트르의 ‘철학자의 주사위’가 드러내고 있는 태도이다.

 

세 번째 굴림, 과학자의 주사위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과학자 중 한 명일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평생토록 남긴 글과 편지들 여러 곳에서 ‘주사위’에 대한 비유를 사용했다. 아마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물리학자 ‘막스 보른’에게 보낸 편지에서 등장하는 문장일 것이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아인슈타인은 무슨 뜻에서 이런 말을 남겼을까? 이것은 양자역학, 특히 ‘코펜하겐 해석’에 대한 그의 비판적인 태도에서 나온 말이다. 이 맥락을 아주 간략하고 거칠게 설명하면 대충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먼저 아인슈타인은 고전적인 물리학과 고전적인 기계론을 지지했다. 이 전통적인 관점에 따르면 어떤 일정한 조건들이 주어졌을 때, 과학은 그 조건들 아래 어떤 결과가 나올지 ‘항상’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세계라는 것은 정해진 무언가를 넣으면 정해진 과정을 거쳐 그에 따라 항상 일정한 결과물을 내놓는 정밀한 기계와 같아야 한다는 것이고, 과학의 역할은 그 기계의 공정 과정을 알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은 그러한 세계를 부정한다. 양자역학에서는 제 아무리 일정한 조건들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완벽하게’ 그 과정을 계산하고 ‘완벽하게’ 그 결과를 예측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단지 우리는 확률을 통해서만 그 결과를 말할 수 있다. 마치 주사위를 던질 때 홀수나 짝수 중 무엇이 나올 거라고 장담하지 못하고 대신 홀수가 나올 확률을 50%라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인슈타인은 그러한 양자역학의 세계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그 자신은 무신론자에 가까웠음에도 세계의 이치로서의 ‘신’을 말하며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진리를 규명함으로써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는 삶과 세계에 대한 믿음. 이것이 ‘과학자의 주사위’에서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태도이다.

여담으로, 이후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전통적인 관점을 고수하면서 양자역학에 반박할 수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생각해내 양자역학의 옹호자들에게 보냈고, 이 문제들은 아인슈타인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양자역학의 합리성을 증명하는데 기여하여 양자역학 이론을 크게 발전시켰다.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오늘날 양자역학 발전의 주요한 공로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마지막 굴림, 당신의 주사위

“주사위는 던져졌다.”

“인간은 주사위와 같아 스스로를 인생 속으로 던진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이로써 우리는 세 개의 주사위와 그 주인들을 모두 살펴보았다. 의지로 결단하고 그 결단에 자신과 세계의 운명을 걸고자 했던 카이사르,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 따윈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고뇌하고 사유하면서 선택과 실천을 통해 스스로 삶과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르트르, 기계와 같이 계산되고 예측 가능한 삶과 세계를 추구했던 아인슈타인. 이 세 사람의 주사위들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 그리고 세계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태도들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이것들은 운명을 다루는 각기 다른 태도들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러한 태도들은 그들 각각을 둘러싼 삶의 맥락 및 그들이 헤쳐 나와야 했던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즉 우리들에게도 그들과 또 다른 – 사실 그들 중 누군가와 비슷하다 해도 큰 상관은 없다 – 주사위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본디 주사위란 유사 이래 세계 곳곳에서 수없이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음은 이미 글 서두에서 밝히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제 물어야 할 것은 정해져 있다.

당신의 주사위는 어떤 주사위인가? 어떤 모양이고, 어떤 빛깔이며, 무엇을 위해 어디로 던져지는가?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당신의 삶과 세계, 운명을 다루고자 하는가? 자, 이제, 당신의 주사위를 굴릴 시간이다.

 

* 이 에세이는 일민미술관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국고 보조금을 지원받아 수행한 ‘2021년 사립박물관 미술관 온라인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의 결과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