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긴즈부르그의 『밤의 역사: 악마의 잔치, 혹은 죽은 자들의 세계로의 여행에 관하여 Storia Notturna: Una decifrazione del sabba』 역자후기 현장스케치
일민미술관이 2015년 이래 지속해서 진행해 온 <역자후기>는 동시대 예술과 인문학의 접목과 교감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대표적인 인문학 프로그램이다. 역자를 초청해 책의 내용뿐 아니라 출간 배경, 저자에 대해 논하고, 번역과정에서 경험한 이해와 관점 등 역자의 개인적인 소회까지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역자후기> 21번째로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展(2021.4.16.~7.11)에 맞춰 카를로 긴즈부르그(Carlo Ginzburg)의 『밤의 역사: 악마의 잔치 혹은 죽은 자들의 세계로의 여행에 관하여』(이하 밤의 역사)를 선정했다. 1989년 출간된 『밤의 역사』를 소환한 것은 ‘샤머니즘’과 ‘재앙’이라는 키워드로 전시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는 동시대 예술가들이 샤머니즘과 우주론적 세계관을 예술적 방법론으로 탐구하고, 관람객 스스로의 내면세계를 깨달아 가는 과정을 다양한 예술작업을 통해 보여준다.
『밤의 역사』 속 불안의 시대에는 수많은 혐오와 음모론이 등장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기존의 가치관을 마비시키며 많은 음모론을 야기하고 타자를 희생양 삼는 인종 혐오로까지 번지고 있는 것을 보며, 역사를 되풀이하며 나타나는 배타와 혐오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성을 느꼈다.
미시사(微視史) 연구 방법의 개척자 긴즈부르그의 이 책은 실제 문헌을 통해 중세 이후 유럽 마녀사냥의 원인이 된 ‘악마의 잔치’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기원을 추적한다. 그는 세밀한 기록 연구로 유럽 곳곳에 남아있는 악마의 잔치 흔적의 유래를 찾았다. 14세기 전반, 유럽 기독교 문명은 나병 환자와 유대인, 그리고 무슬림에 대한 적대감과 증오심을 분출했고, 탄압과 폭력 속에서 조작되거나 부풀려진 증거들은 동물로의 변신, 야간 비행, 십자가 모독, 난교 파티 등과 같은 다소 공포스러운 이미지로 정착되었다. 15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벌어진 마녀재판에 등장하는 이러한 음모는 소외된 집단에 대한 적대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긴즈부르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악마의 잔치 이미지가 기존 민속 문화에 뿌리내리고 있던 샤머니즘에 기인한 것이라는 문화적 흐름까지도 밝혀낸다. 긴즈부르그의 미시사 연구는 기독교 문명에 덮여있던 유럽 민중 문화의 지층을 드러내고, 유럽 지역의 민속 전통과 고대 시베리아 샤머니즘 전통의 유사성을 발견함으로써 유라시아의 고대 샤머니즘 연구로까지 그 저변을 넓히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역사의 다각적인 면을 보기 위해서는 직선이 아닌 ‘점’, 점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형태’를 볼 필요가 있음을 긴즈부르그의 미시사 연구는 보여주고 있다. 1321년 프랑스의 작은 마을의 일화에서 시작한 긴즈부르그의 연구는 마침내 유사성의 추론에 근거해 교류의 측면에서 “기독교 문명에 의해 가려졌던 유라시아의 고대 원시 신앙 문화와 토템, 샤머니즘의 유럽으로의 확산” 담론에 도달한다. 역자 김정하는 이 책을 번역하는데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삶의 10년 가까이 “파괴”한 애증의 책이라고 말하면서도 사람이 살면서 맺는 관계에 일방적인 것은 없기에 얻은 것 또한 많다고 한다. 이 책의 번역에 쏟은 시간은 ‘유라시아를 보아야 지중해를 이해할 수 있다’는 그의 연구 방향성에 확신을 주었을 뿐 아니라 역사는 수없이 많은 점과 그 점 간의 유기적 관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차이를 차별이 아닌 다양성의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교훈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사소한 에피소드에서 출발해 다시 쓰인 역사는 평범한 개인과 소집단의 모습을 생생히 되살리며, 특히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불안의 시대에 소외된 집단에 대한 폭넓은 시각과 시선을 재고하게 한다.
시각예술은 예술가의 시선으로 시대를 읽고 그들의 조형 언어로 시대를 증언하는 작업이다. 동시대 철학, 문학, 역사학 등 다양한 인문학에 대한 이해는 동시대 예술에 대한 시야를 넓혀준다. 이번 <역자후기>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불안의 시대의 인간에 대한 이해와 샤머니즘 속에서의 또 다른 문화 발견의 기회가 되었기를 바란다.
최혜인(일민미술관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