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민미술관 역자후기 Translator’s Note 19 – 일라이 클레어, 『망명과 자긍심』
2020.08.22.(Sat)

일라이 클레어의 『망명과 자긍심』은 1999년 출간된 이래 퀴어 페미니즘 장애학의 가장 중요한 텍스트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장애학, 퀴어학, 여성학, 젠더학 수업의 필독서로 쓰이고 있습니다. 클레어는 장애・젠더・섹슈얼리티・계급・인종・지역성 등 다양한 요소가 교차하고 중첩되면서 한 개인의 몸과 삶에 얼마나 복잡한 문제들을 얽어내는지, 그것들이 몸을 어떻게 빚어내고 또 어떻게 타자화하는지, 이 다층적 위치성을 이해하고 다층적 억압에 함께 맞서려면 어떤 정치가 필요한지를 이야기합니다. 클레어는 다양성을 정치화하려면 단순히 차이를 덧붙이고 나열하는 데서 그칠 수 없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벌목과 어업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시골에서 자라나 도시에서 환경운동을 접한 활동가로서 지방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환경파괴 문제의 얽힘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퀴어 정치 안에서의 계급 격차와 도시-지방 격차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보수적이고 혐오적이라는 딱지가 붙은 고향 시골을 떠나지 않고 거기서 퀴어 공동체를 일구려는 퀴어들은 어떻게 운동을 꾸려야 하는가. 장애인이자 지정성별 여성인 젠더 퀴어라는 위치성의 중첩이 만들어내는 모순과 가능성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규범적 여성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로부터 소외되어 있고, 아무도 나를 성적으로 욕망할 만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그럼에도 지속적인 성폭력에 시달리는 장애인 여성의 모순적 위치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사내애처럼 입고 행동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폭행과 성폭력을 겪었던 유년기는 부치-트랜스젠더-젠더 퀴어 정체화와 어떻게 얽히는가. 차별과 억압 속에서 생존해온 사회적 소수자들은 자신들에게 붙여진 모멸의 용어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과거를 부인하거나 망각하지 않으면서도 그 용어들을 자긍심의 이름으로 고쳐 쓰는 것이 가능할까.

사회적 소수자들이 어떻게 도둑맞은 몸을 되찾고, 자신을 살게 해줄 언어를 발전시키고, 서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 클레어가 제안하는 다중쟁점의 정치를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저자소개_일라이 클레어
일라이 클레어는 뇌병변 장애인, 젠더퀴어, 페미니스트, 친족 성폭력 생존자로서 살면서, 장애·환경·퀴어·노동운동가이자 시인, 에세이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당사자로서 사려 깊은 시선과 분석가로서 냉철한 비판을 오가는 글을 통해, 퀴어, 장애, 환경, 페미니즘, 계급, 인종 문제의 복잡한 얽힘을 성찰한다. 또한 단일 쟁점에 매몰되는 정치가 아닌 광범위한 교차성 정치로 나아가기 위한 연대가 필요한 이유를 역설한다. 『망명과 자긍심』(1990) 외의 저서로는 15년간 쓴 시를 모은 『골수의 이야기The Marrow’s Telling』(2008), 치료를 주제로 기억과 역사와 비판적 분석을 엮어 짠 『눈부시게 멋진 불완전함Brilliant Imperfection』(2017)이 있다.

역자소개_전혜은
퀴어 페미니즘 장애학 연구자. 서울대 여성학 협동과정 석사 졸업, 박사 수료. 『섹스화된 몸: 엘리자베스 그로츠와 주디스 버틀러의 육체적 페미니즘』(2010), 비사이드 선집1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2018, 공저)를 썼고, 일라이 클레어의 『망명과 자긍심: 교차하는 퀴어 장애 정치학』(2020)을 공역했다. 아픈 사람, 퀴어, 장애, 행위성, 페미니즘에 관한 글을 쓰고 번역하고 강의한다. 퀴어 페미니즘 관련 연구자 및 활동가 모임 비사이드 콜렉티브에서 2017년부터 매년 비사이드 포럼을 공동 기획하고 강연하며 책으로 펴내고 있다.

강연자
전혜은

일시
2020. 08. 22. (토), 저녁 6시

장소
ZOOM 화상회의
* 현장참여에서 ZOOM 화상회의로 변경되었습니다.

비용
무료

문의
일민미술관 학예실
info@ilmi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