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on is Karen, revisited〉(2026)
투명 유리로 된 물건을 모아 재구성한 이 신작에는 국적도 성격도 이력도 제각기 다른 11인의 작가가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이하 김 & 마스) 자신이다. 두 사람은 다른 자아의 이름과 양식을 빌려 작업하는 이 방식을 ‘프레노니미(phrenonymy)’라 부른다. 가명(pseudonymy)의 일종이지만 단순히 이름만 빌리는 것이 아니라 정신 상태와 성격적 특성까지 반영한다. 보존과 전시, 내부와 외부를 잇는 통로라는 기능이 공존하는 비트린의 속성은 복수의 이름과 인격이 뒤섞인 이들 작업의 비결정성과 호응한다.
이번 신작은 김 & 마스의 또 다른 정체성, ‘킴킴갤러리’의 기획전 형식으로 2025 치바 시티아츠 트리엔날레에 출품했던 〈Sharon is Karen〉(2025)을 변형한 것이다. 작품 제목은 영어권 문화에서 흔히 쓰이는 “Sharing is caring(나눔이 곧 배려)”이라는 격언을 비튼 언어유희이다. ‘Sharon’과 ‘Karen’은 영어 밈에서 서로 대비되는 인물형을 가리키는 기호인데, 샤론이 친절하고 인내심 있는 사람인 반면 캐런은 특권 의식에 기대어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인종차별을 일삼는 사람이다. 작품은 대조적인 두 이름을 혼동하는 상황을 끌어온다. 이처럼 여러 출처에서 길어 올린 유무형의 재료로 유머를 구사한다는 특징이 이들의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캐런이라 불린 사람이 실은 샤론이었던 것처럼, ‘11인의 참여 작가’는 프레노니미로서 김 & 마스의 예술적, 정치적, 개인적 경험을 가로지른다. 수십 개의 가명을 사용했던 포르투갈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가 처음 사용한 가명 ‘알렉산더 서치(Alex Search)’, 그레고리 마스의 출신 지역 하겐에서 유래한 ‘디트마어 하겐(Dietmar Hagen)’, 반동적 정치인으로 변절한 러시아 펑크 시인의 성을 딴 ‘그리고리 리모노프(Grigori Limonov)’가 그 예다. 유희적인 공상 속 등장인물들은 그레고리 마스가 진단받은 ‘비외상성 해리성 정체성 장애’라는 희귀한 상태와도 연결된다.
투명 유리 오브제만으로 이루어진 신작은 작품이 놓인 비트린 자체, 그리고 비트린을 품고 있는 건축물의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선택이다. 이케아 제품부터 빅토리아 시대 유물, 무연(lead-free) 골동품, 표면이 매끄러운 디캔터, 인삼을 담는 단지, 잼 병, 그리고 포름알데히드를 채웠던 동물 표본 보존 용기 등 각기 다른 출처와 용도를 지닌 투명한 것이 포개지며 바로크적인 과잉의 형태를 이룬다. 레이어 위에 레이어, 굴절 위에 굴절이 중첩되면서 투명함은 복잡한 깊이를 만든다. 유리는 영원에 가까운 수명을 가지지만 깨지기 쉽다는 상반된 속성을 갖는다. 1만 년을 버티는 물질이 손에서 미끄러지는 즉시 산산조각 날 수 있다는 아이러니는 역사를 만들어온 건축, 특히 지난 100년간 혁명, 전쟁과 재건, 경제 성장으로 인한 도시의 변화를 견뎌온 이 건축물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김 & 마스는 해체와 변형, 차용과 재조합을 오가는 전술, 사물과 개념을 뒤섞는 방법론을 “프랑켄슈타이닝”이라 명명해 왔다. 〈Sharon is Karen, revisited〉는 분열하는 자아에 대한 은유이자 100년의 시간을 견딘 건축에 대한 성찰이다. 작품 수장함, 개방형 전시 공간, 특정 장소, 지형지물인 비트린에 놓인 투명한 존재들은, 진실한 이름이나 하나의 색으로 수렴하지 않고 잠시 이곳에 머무르며 서로를 겹친다.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b. 1966, 1967)
2004년부터 한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작가 듀오이다. 김나영은 서울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조소과와 파리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했고, 그레고리 마스는 독일 하겐 출신으로 파리 소르본대학교 철학과와 파리 국립미술학교, 조형예술 고등연구원, 네덜란드 얀 반 에이크 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는 서로 연관이 없는 재료나 개념을 조합해 이질적인 관계망을 만든다. 과거와의 연결을 새롭게 검토해 현재를 정의하는 것이 이들의 대표적인 방법론이다. 공간이 없이도 상황을 조건 삼아 실행 가능한 예술을 모색하면서 ‘킴킴갤러리’를 창립(2008─)해 동료들과 기획, 출판, 커뮤니티 워크숍 등을 지속중이다. 《파라노이아 파라다이스》(2024, 아뜰리에 에르메스, 서울), 《리프로스펙티브》(2019, 성곡미술관, 서울), 《무아 자기도취》(2014, 스플릿트 파운틴, 오클랜드, 뉴질랜드) 등의 개인전을 열었고, 경기도미술관(2025, 안산), 치바 시티아츠 트리엔날레(2025, 치바, 일본), 국립현대미술관(2022, 과천) 등에서 단체전에 참여했다.
비트린
비트린은 일민미술관 건축 100주년(2026)을 맞아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옛 출입구에 가설된 공간입니다. 미술관에서 ‘진열장’을 뜻하는 단어인 비트린이 수장함이자 임시 통로로 기능합니다.
기간
2026.4.20.(월) ― 7.20.(월)
장소
일민미술관 옥외 비트린
* 별도의 입장권 없이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주최
일민미술관
참여작가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기획
신지현
진행
신혜인
그래픽 디자인
슬기와민
공간 디자인
길종상가
